그러나 현실은 매우 다르다. 베트남은 최근 1988년부터 유지해온 ‘두 자녀 권고 정책’을 전면 폐지했다. 이는 단지 오래된 정책을 거둬들인 것이 아니라, 출산율 하락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인정하고 대응에 나선 첫 공식 조치였다. 현재 베트남의 합계 출산율은 1.91명이며 경제 중심지인 호찌민시의 경우 1.3명대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난다. 출산율이 자연 인구 재생산 수준(2.1명)을 밑돌기 시작했고, 대도시를 중심으로 그 하락세는 더욱 가파르다. 인구는 아직 증가하고 있지만, 2040년을 전후로 생산 가능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가 본격화되며, 경제 성장의 엔진이 식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를 감지한 베트남 정부는 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공립학교 수업료를 전면 면제하고, 육아휴직 확대, 보육 인프라 강화, 출산 장려금 등 여러 대책을 연이어 발표했다.
베트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태국은 이미 출산율이 1.0명으로 일본보다 낮은 수준에 진입했으며, 연간 출생아 수는 5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지금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향후 60년 안에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다. 2023년 기준 출산율은 0.97명에 그쳤고, 정부는 부부가 함께 사용하는 공동 육아 휴가를 2026년까지 30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아직 출산율이 1.7명대로 비교적 높게 유지되고 있지만, 최근 1분기 출생아 수가 전년 대비 11.5%나 감소하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부는 위기감을 느끼고 인공 수정 보조금 도입, 농촌 지역 아동 수당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주택 비용 상승, 양육 부담, 여성의 경력 단절 우려는 출산율 하락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높고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국가들도 있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 8천만 명, 출산율 2.18명, 평균 연령 30세로 아직 ‘젊은 국가’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필리핀은 1억 2천만 명의 인구에 출산율이 2.6명으로 동남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미 출산율이 1.5명 이하로 떨어지고 있으며, 2030년 전후 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2045년 독립 100주년을 앞둔 시점에는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실업률은 17%에 달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여전히 낮다. 사회 복지 제도 역시 아직 고령화 시대에 걸맞은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필리핀의 경우 출산율은 높지만, ‘많이 낳는다’는 것이 ‘잘 기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체 인구의 20%가 빈곤선 이하에 놓여 있고, 청년 실업률은 15%를 넘긴다. 교육과 보건 인프라는 취약하고, 도시 과밀 현상은 심각하다. ‘젊고 많은 인구’가 경제적 자산으로 전환되려면, 그에 걸맞은 사회 기반과 고용 구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외에도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 저개발 국가는 여전히 출산율이 2.5명 안팎으로 유지되고 있지만, 이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도시화와 교육 수준 향상이 이루어지는 순간, 출산율은 급격히 떨어질 것이고, 고령화는 더 빠른 속도로 다가올 것이다. 특히 미얀마는 정치 불안과 국제 제재로 사회 시스템이 마비 상태에 가까우며, 캄보디아와 라오스는 의료·교육 접근성이 낮아 고령화에 대한 대비가 사실상 전무하다. 출산율이 높은 채로 고령화에 진입하는 이중 부담은 더욱 위험할 수 있다.
이처럼 동남아는 지금 인구 구조의 전환기에 있다. ‘젊고, 싸고, 많은 인구’라는 성장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으며, 일부 국가는 이미 고령화의 현실을 체감하고 있고, 나머지 국가는 그 문턱에 서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선, 한국 기업들이 의존하고 있는 동남아 제조 기지의 인건비 상승과 노동력 부족은 공급망 재조정 압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는 반도체, 전자, 의류 등 주요 산업의 해외 생산 기지로 자리 잡은 지역이기에 인구 구조 변화는 단기적인 비용 증가 뿐 아니라, 장기적인 구조 전환을 촉구하는 변수가 된다. 또한 한국은 동남아 국가들로부터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주요 수혜국이다. 제조업, 농업, 요양·돌봄 분야에서 동남아 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만큼, 해당 국가들의 인구 감소는 국내 현장의 인력난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동남아 국가들이 고령화되면 소비 구조 또한 바뀌게 된다. 스마트폰, 의류, 화장품 같은 소비재에 집중된 한국 기업들의 수출 전략은 고령 소비자에 적합한 헬스 케어, 복지, 교육, 노후 생활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돼야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아세안 국가들의 전체 인구 숫자가 아니라 지역별 속도와 방향을 봐야 한다. 동남아는 이제 더 이상 ‘젊고 인구 많은 후발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인구 구조 변화는 곧 한국의 수출, 생산, 고용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칠 변곡점이며, 우리 경제 역시 대응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아직은 노동력 부족 현상을 동남아 근로자들로 지탱하는 우리 사회와 기업들이, 정작 동남아의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시점에 더욱 심각한 피해를 볼 것이 분명하다. 그때가 되면 어느 개그 코너처럼 ‘그럼 소는 누가 키울 건지’ 고민만 하다 아예 ‘소 키우기’를 포기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이성득 인도네시아 UNAS경영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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