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일본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일본의 존재감이 떨어졌던 것은 경제적 이유가 가장 컸다. 장기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정보기술(IT)과 디지털 산업에서 일본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해진 게 기본 배경이다. 우리나라 기업가와 일반인들 사이에 이제 일본에선 별로 배울 게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말, 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일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저성장과 초고령사회를 겪고 있는 일본에서 한국이 당면한 경제·사회적 과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찾아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초고령사회를 경험 중인 일본은 주요국 가운데 고령화율이 가장 높은 ‘고령사회 선진국’이다. 초고령사회는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자가 20%를 넘었다는 의미다. 올해 일본의 고령화율은 30% 선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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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일본의 존재감이 떨어졌던 것은 경제적 이유가 가장 컸다. 장기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정보기술(IT)과 디지털 산업에서 일본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해진 게 기본 배경이다. 우리나라 기업가와 일반인들 사이에 이제 일본에선 별로 배울 게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말, 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일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저성장과 초고령사회를 겪고 있는 일본에서 한국이 당면한 경제·사회적 과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찾아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초고령사회를 경험 중인 일본은 주요국 가운데 고령화율이 가장 높은 ‘고령사회 선진국’이다. 초고령사회는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자가 20%를 넘었다는 의미다. 올해 일본의 고령화율은 30% 선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2025년 문제와 슈카츠(終活) 문화 확산
우리나라에서는 베이비붐 세대(1958~1963년생)가 고령자 세대에 속속 진입하고 있다. 저출산이 심각한 데다 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훨씬 빠르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대한민국은 일본에서 참고할 만한 정보와 지식이 꽤 있다. 일본의 고령자들이 노후에 어떻게 살고 있고, 보유 자산은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를 소개한다.
올해 일본 사회 최대 이슈는 ‘2025년 문제’다. 이는 고령자 가운데 돌봄 및 의료 지원이 필요한 후기 고령자(75세 이상)가 급증하며 나타난 사회 현상을 지칭한다. ‘단카이 세대’는 올해 모두 후기 고령자에 편입됐다. 전기 고령자(65~74세)가 1549만 명, 후기 고령자(75세 이상)가 2076만 명에 달한다. 후기 고령자 가운데 80세 이상만 1290만 명이다(2024년 기준). 후기 고령자들이 크게 늘어나 요양 보호사나 간호사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다. 의료 및 간병비 급증으로 가정과 국가에 재정 부담이 매우 커졌다.

고령자 급증과 함께 ‘슈카츠(終活)’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슈카츠는 인생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을 앞두고 본인 스스로 준비하는 각종 활동을 의미한다. 6월 초 인터넷 리서치 회사인 ‘NEXER’가 60대 이상 남녀 451명을 대상으로 슈카츠에 대한 의향을 물은 결과, 68.1%가 ‘이미 시작했다’ 또는 ‘준비 예정’이라고 답했다. 고령자 10명 중 7명이 인생을 떠나는 준비를 구체적으로 실행 중이다.
슈카츠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는 질문에 대해선 신변 정리(44.3%), 재산 정리(20.9%), 엔딩노트 정리(11.1%), 유언서 작성(7.5%) 순으로 답변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이후를 대비해 생전에 미리 재산이나 신변 정리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령자 세대 핵심 인구, 단카이 세대
단카이(團塊)는 일본어로 ‘덩어리’를 뜻하는 단어다. 이 용어는 경제기획청 장관 출신 작가인 사카이야 타이이치(堺屋太一)가 1976년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기에 쓴 소설 제목에서 유래한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전후 혼란기를 거쳐 평화 시기에 들어간 1947~1949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를 뜻한다. 단카이 세대 사람들은 경쟁과 동류 의식, 그리고 노력은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의식이 강하다. 유행에도 매우 민감하다.

단카이 세대를 포함한 후기 고령자 증가는 사회 보장비 증가로 연결된다. 의료보험 및 가이고(노인 돌봄)보험, 공적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려면, 국가 재정 지출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고령자 급증에 따른 사회보장비 증가로 재정 적자가 커지자 ‘가이고보험법(介護保險法)’을 개정해 고소득 고령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높였다. 기존에 10%였던 후기 고령자의 의료비 부담을 일정 소득이 있을 경우 20%까지로 올렸다.
이들 고령자들은 소비 시장과 금융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노후에 저축을 깨서 생활비로 쓰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투자 축소로 이어졌다. 개인 소비가 축소되고, 소비 관련 기업의 생산 활동이 줄어들어 경제 규모가 작아질 수도 있다.
일본인들은 근검절약하고, ‘투자’보다 ‘저축’을 선호한다. 지진 등 자연재해가 많은 데다 섬나라 특유의 안정지향적인 성향이 복합적으로 얽힌 특성이다. 장기간 제로 금리 아래서도 주식이나 금융 상품 투자보다 예금이나 현금으로 보유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개인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2200조 엔을 넘는다.
상속인 없는 국고 귀속 유산 매년 1015억 엔
재일교포 박혁신 파이낸셜플래너는 “일본인은 신중하고 성실한 사람이 많다 보니, 돈을 다 쓰고 죽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고 아껴만 둔다면, 일본 경제가 침체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힘들게 모은 자산을 다 쓰는 것이야말로, 풍요로운 노후를 보내고, 다음 세대를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말한다.
박혁신 파이낸셜플래너는 요즘 일본에서 ‘제로카츠(ゼロ活)‘가 유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자 노인들 사이에 열심히 일해서 모은 재산을 인생의 마지막까지 마음껏 쓰자는 인식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신의 재산을 다 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일본인들이 꽤 된다. 대법원이 발표한 자료(2024년 기준)에 따르면 상속인이 없어 국고로 귀속된 유산은 1015억 엔에 달했다. 이 수치는 10년 전의 약 3배에 해당한다. 고령자들이 늘어나면서 국고로 귀속되는 돈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소유자가 불분명한 ‘소유자 불명 토지’도 이슈다. 2023년 4월부터는 일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상속이나 유증으로 얻은 토지의 소유권을 국가에 귀속시킬 수 있는 ‘상속 토지 국고 귀속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저축을 선호해 온 일본인들 사이에 최근 50~60대에 돈을 활발히 쓰자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일이나 육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돈과 시간의 여유가 조금씩 생기는 시기에 자신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데 자산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60세 이상이 개인 금융자산 60% 보유
일본은행이 2024년 3월에 발표한 ‘자금순환통계’에 따르면 일본 개인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2230조 엔으로 사상 최대였다. 그 가운데 약 60%를 60세 이상이 보유한다. 일본인의 저축 습관은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공익재단법인 생명보험문화센터의 ‘노후 생활 불안 여부’ 조사에 따르면, “불안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무려 82.2%에 달했다.
일본의 고령자들이 자산을 계속 움켜쥐고 활용하지 않는다면, 일본 경제에 부정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장기 경기 침체에다 고령 인구 증가로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어 돈이 돌지 않게 되면 일본 경제가 더 침체할 수 밖에 없다. ‘제로카츠’가 일반인들 사이에 설득력을 키워 가는 배경이다.
자산을 보유한 고령자는 생전에 충분히 쓰고, 남은 자산은 적절한 시점에 자녀에게 상속하는 것이 유리하다. 본인 노후 생활에도 좋고, 일본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일본의 상속 현황을 살펴보자.
일본에서 상속세와 증여세는 개별 세법이다. 상속세를 줄일 목적으로 활용되는 증여를 막기 위해 증여세에 대해 고율의 세금을 부과한다. 증여세율은 금액에 따라 최저 10%에서 최고 55%까지다. 자식에게 상속할 재산이 많지 않은 사람이 생전증여를 꺼리는 이유다. 상속할 재산이 많은 사람은 분할증여를 통해 상속세의 누진 부담을 줄이고 있다. 고령자가 자녀의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주로 활용했던 ‘생전증여’ 세제가 2023년부터 개편됐다.
상속세 납세자 26만 명 달해
일본의 연간 사망자는 137만 명 정도다. 이들 가운데 상속세를 내야 하는 과세 대상자가 약 12만 명이다. 1인당 상속세액은 평균 1737만 엔이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 가운데 11명 중 1명이 상속세의 과세 대상에 해당한다. 실제로 상속세를 내는 사람은 고인의 유산을 물려받는 배우자와 자식이다. 상속세 납세자 수는 2020년 기준으로 약 26만4000명에 달한다.
상속세를 적게 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재산을 줄이는 것이다. 상속세는 재산이 많을수록 세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생전증여’가 최고 절세 수단으로 활용되는 이유다. 매년 증여세를 신고하는 일본인은 50여만 명에 달한다. 증여를 통해 연간 2조 엔 정도의 재산이 이전되고 있다. 상속재산의 40%는 토지, 가옥 등 주거용 물건이다.
일본 증여세와 상속세 체제에선 3년 내 가산 규칙이 존재한다. 생전증여를 한 후 3년 이내에 본인이 사망할 경우, 상속세를 매길 때 3년 이내에 증여한 재산은 가산해서 상속세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생전증여 이후 3년 이내에 증여자가 사망할 경우 그 증여는 없었던 것이 된다. 2024년 1월 1일부터 3년 내 가산 규칙이 7년으로 연장됐다. 2024년 1월 1일 이후 증여에 대해 기존 3년 내 가산이 7년 내 가산으로 변경됐다. 한꺼번에 7년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고, 단계적으로 기간이 연장된다. 최종 연도인 2031년 1월 1일부터 7년의 가산 기간이 적용된다.
상속세를 줄이는 기본은 과세 대상 재산을 줄이는 것이다. 본인이 살아 있는 동안 법률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피상속인에게 증여를 많이 하는 것이 세금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증여세의 비과세 금액인 110만 엔 범위 안에서 매년 생전증여를 하는 절세술이 많이 활용된다. 예를 들어, 2인 자녀에게 매년 110만 엔씩 증여를 10년간 계속하면, 재산을 2200만 엔 축소하는 게 가능하다.
일본 ‘제로카츠’와 한국 ‘다쓰죽’ 유행
일본에서 증여세는 누진 과세로 최대 55% 세율이 적용된다. 따라서 증여세가 발생하는 증여는 손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자산을 많이 보유해 상속세율이 높은 사람은 증여가 유리할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110만 엔이 넘는 증여로, 증여세를 냈다고 해도 증여액에 따른 상속세 절감 효과가 있는 사람도 있다. 110만 엔을 넘는 증여에 따른 절세 효과는 당연히 자산이 많을수록 커진다.
실제 어느 정도 세금을 줄일 수 있을까. 자녀 2명이 있는 단신 부모 사례를 보자. 10억 엔의 재산이 있을 경우 10년에 걸쳐 매년 생전증여를 통해 최대 8000만 엔의 세금을 줄일 수 있다. 이런 절세 효과를 기대하려면, 10년 단위의 장기 실행이 필요하다. 박 파이낸셜플래너는 “2024년부터 가산 연도가 늘어났기 때문에 장기 절세 계획을 미리미리 철저히 세우라”고 조언한다.
사회와 경제 성장 흐름을 보면, 한국은 20여 년 시차를 두고 일본을 따라가는 양상이다. 단카이 세대 등 고령자들이 자산을 많이 보유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자산을 축적한 사람이 많다. 한일 고령자 세대의 소비나 상속 행태도 비슷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요즘 우리나라 부유층 고령자들 사이에 ‘다쓰죽’이 유행한다. 서울 시내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만난 부유층 고령자들은 “자식들에게 재산을 많이 남겨줄 필요가 없다”며 “지인들 사이에 ‘다 쓰고 죽자’고 서로 얘기한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사후 상속’보다 ‘생전증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본인이 여유 있게 노후를 보낸 뒤 이성적 판단이 가능한 시점에 자녀들에게 생전증여를 하는 방식이다. 자산을 많이 가진 부유층 고령자들이 소비와 생전증여를 활발히 하도록 법적·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대한민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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