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뜨겁게 달군 이르지 킬리안 축제는 오는 26일부터 서울로 이어진다. 국립발레단은 역삼동 GS아트센터에서 그의 작품을 엮은 ‘킬리안 프로젝트’를 무대에 올린다. 포인트 슈즈 대신 양말, 티칭 슈즈를 신은 발레리나들이 가장 현대적인 발레를 선보인다.
이 가운데 유독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띈다. 수석무용수 박슬기(39). 출산 후 3개월 만에 발레단에 돌아와 지난 5월 ‘카멜리아 레이디’에서 강렬한 조연인 ‘프뤼당스’로 신고식을 치렀다. 새파란 드레스를 입고 열연하던 그는 이번엔 킬리안의 작품 ‘잃어버린 땅(Forgotten Land)’에서 새빨간 옷으로 갈아입는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복귀까지 단 하루도 발레를 놓지 않으려 했다는 그를 지난 1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2007년 입단해 2012년부터 수석무용수로 쉴 새 없이 달린 그가 엄마가 된 후 처음으로 언론과 마주 앉은 날이기도 했다.
박슬기가 참여하는 작품 ‘잃어버린 땅’은 에드바르 뭉크의 회화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춤이다. ‘삶의 춤’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그림 속에서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등장하는데,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사랑과 열정을 경험하는 시기를 연상케 한다. 빨간 드레스의 여인 왼쪽에 있는 ‘하얀 드레스’의 여인은 삶의 시작과 순수를 뜻하고, 오른쪽에 있는 ‘검은 드레스’의 여인은 삶의 끝, 죽음과 고독을 의미한다.“처음부터 끝까지 레드 커플은 숨이 턱까지 차도록 움직여요. (파트너인 허서명과 서로) 눈앞에 별이 보이지 않으면 제대로 춘 게 아니라고 할 정도예요.”
박슬기는 ‘잃어버린 땅’에 이어 스티브 라이히의 음악을 기반으로 한 8명의 여성 군무로 이뤄진 ‘타락 천사(Falling Angels)’에도 참여한다. 클래식 레퍼토리에서 지젤, 키트리 등 항상 주역으로 주목받은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어우러짐’의 미학을 깨달았다고. “소녀시대 8명처럼 합을 맞춰야 아름답게 보이는 작품이란 걸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각자의 느낌대로 같은 동작을 표현하는 개성을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지점이죠.”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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