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밤중 베란다를 타고 이웃 여성 집에 침입해 속옷을 훔친 30대 남성이 이번엔 법원 판단으로 다시 풀려났다. 사건이 벌어진 아파트 안에서 피해자와 불과 20~30m 거리에 가해자가 살고있지만 “증거는 이미 확보됐고 도주·재범 우려가 낮다”는 이유였다. 피해 여성들은 짐을 챙겨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법 안동지원 지선경 영장판사는 A씨(37)의 야간주거침입·스토킹 혐의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날 기각했다. A씨는 변호인을 통해 “직장을 그만두고 안동 지역을 떠나겠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증거인멸 가능성과 재범 위험이 낮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범행은 지난달 27일 자정 무렵 시작됐다. 그는 약 15초 만에 경북 안동시 용상동의 한 아파트 복도 창문을 통해 4층으로 올라가 피해자 집 베란다로 진입했다. 아파트 CCTV와 피해 여성들의 집안에 설치된 홈캠에는 그가 1시간 동안 세 차례나 드나들며 옷장을 뒤적이고 속옷을 훔쳐 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또, A씨는 경찰조사 과정에서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괴한이 내 집 바로 맞은편에 산다'는 사실에 극심한 공포를 호소했다. 경찰은 지난달 그를 붙잡아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이 “초범이고 도주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경찰은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를 추가해 영장을 재신청했고, 검찰은 이를 법원에 넘겼지만 이번에도 기각됐다.
두 차례 ‘석방 결정’에 피해자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지역을 떠났다. B씨(27)는 “보복 범죄가 걱정되고 가해자의 구체적인 신방조차 알 수 없는 현실이 더 두렵다”며 "내가 정말 죽어야되는 건지 법원 판단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은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임시 숙소를 마련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는 관점이 사법 결정에서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서예은 법무법인 가엘 변호사는 “스토킹은 단발성이 아니라 누적되는 범죄”라며 “수사기관과 법원 모두 피해자 입장에서 판단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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