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의 나진이 이 아파트에 들어와 살게 됐을 때 고모는 20대 후반의 백화점 노동자였다. 고모는 말이 별로 없었고 가족과도 잘 섞이지 않았다. 고모가 결혼해 집을 나갔어도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2년 만에 이혼한 고모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오히려 더 어색하고 불편했다.
어린 나진은 그 아파트에 살면서 헤어진 엄마를 가끔 만났다. 처음으로 바깥에서 엄마를 만나고 온 날 차라리 엄마가 죽었다면 나를 버렸다고 느끼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설 전날, 나진은 부엌에서 숙모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고모가 남편에게 맞았으리라고 짐작되는 이야기.
할머니를 돌보는 짬짬이 친구 경은과 시간을 보내던 나진은 고모가 열흘 넘게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고모의 전화기는 발신 정지돼 있다. 나진은 고모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 동네를 뱅뱅 돌다가 어렸을 때 자주 갔던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추천 도서 한 권을 읽는다. 읽을수록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언젠가의 나, 지금의 나, 그리고 고모. 나진은 고모에게 주고 싶은 장면을 쓰기 시작한다.
그 글 속에서 고모는 언젠가 여행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유럽의 한 성당 첨탑에 오른다. 스노보드를 타고 매끄럽게 활강한다. 해안 길을 산책하며 노래를 짓는다. 애인의 목덜미에서 눈을 뜨고 방금 꾼 꿈 이야기를 한다. 어느 예배당 뒷자리에서 기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오래 기도하다 눈을 뜬다.
나진이 글을 쓰며 벌써 3주간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고모는 짧은 외출을 하고 온 것처럼 집으로 돌아온다. 고모와 나진은 부엌 식탁에 마주 앉아 별일 없었느냐고 서로에게 묻는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둘 다 말하지만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 그 순간, 서로가 변한 것을 알아차린다.
※수상작 <잠든 나의 얼굴을>은 올해 하반기 은행나무 출판사를 통해 단행본으로 출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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