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부과와 유예를 반복하며 예측을 어렵게 하고 있지만, 이미 한국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주요 연구기관은 관세 등 대외 경제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한국 경제의 성장 전망을 하향조정하였고, 자동차·철강 등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 중 일부는 경영상 해고를 포함한 구조조정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그런데, 관세충격에 의한 경영위기는 전통적으로 노동법상 정리해고 사유로 여겨졌던 장기간의 실적 부진이나 구조적 적자와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이 때문에 과연 이러한 관세 충격이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라는 정리해고의 법적 요건을 충족하는지 쟁점이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법원이 인정하는 긴박한 경영상 위기는 재무건전성 악화, 유동성 위기, 구조적·지속적 경영 악화 등의 요소를 가지는데(대법원 2014. 11. 13. 선고 2014다20875 판결), 관세 충격은 이러한 전통적 요소들과는 달리, 단기적으로 촉발되면서 외생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기 때문이다.
대법원 2022. 6. 9. 선고 2017두71604 판결(대상판결)은 미국 오바마 행정부 후반부터 트럼프 1기 행정부까지 진행된 반덤핑 관세 정책에 의해 대미 수출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철강업체 사건으로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을 마주하고 있는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상판결은 관세와 같은 급격하고 외생적인 통상 충격도 구조조정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함으로써, 통상 환경의 변화에 대응한 기업의 경영 판단에 법적 근거를 부여한 중요한 전환점이 된 판결이다. 대상판결을 중심으로 관세와 같은 통상환경의 변화가 노동법상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의 해석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살펴본다.
<i># 재무건전성 위기</i>
관세 등 통상환경의 변화에 따른 경영상 위기는 당장의 재무제표에서 쉽게 확인하기 어려운 특징을 가진다. 고율의 관세 부과는 현재와 미래의 영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원인이지만, 이러한 영업 부진이 매출,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등에 반영되어 재무제표에 기록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대상판결 사안에서도 해고 대상 근로자들까지도 경영상 위기의 존재는 인정하였음에도 재무제표상으로는 정리해고 당시까지도 당기순이익 흑자가 기록된 점이 문제되었고, 대상판결의 원심인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이러한 이유를 들어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을 부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선적기준 매출액, 매출총이익, 영업이익의 감소 등을 근거로 N사가 급격한 영업의 침체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또한, 대상판결의 변론 과정에서는 부채비율, 자기자본 대비 총차입금 비율, 차입금 의존도, 당좌비율 등 재무건전성의 양상을 보여줄 수 있는 여러가지 요소가 종합적으로 제시되었다.
한편, 수출기업들이 활용하는 다양한 무역조건은 현재의 영업상황이 재무제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를 어렵게 할 때가 있다. 특히, 갑자기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는 상황에서는 기업이 무역조건을 변경하여 재무제표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복잡해지기도 한다. 가령, 대상판결 사안에서 N사는 미국 수입업체의 요구로 수출조건을 기존의 FOB(본선인도조건)에서 DDP(관세납부후 인도조건)로 변경하였는데, 이에 따라 기존에는 한국에서 수출상품을 선적할 때 매출이 인식되었으나 수출조건 변경 이후에는 통관과 관세 납부가 완료된 이후 매출로 인식되면서 재무제표 반영에도 시간 차이가 발생하게 되었다.
대상판결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일반적으로 정리해고 요건의 하나로 언급되던 ‘지속적인 적자 누적’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판단하였다는 사실이다. 과거 판례와 해석들은 지속적인 적자 누적을 구조조정의 판단에서 중시해 왔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갑작스럽고 중대한 무역조건의 변화가 단기간에 경영상 위기를 야기할 수 있으며, 이러한 위기가 쉽사리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충분히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에 해당하여 구조조정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i>#유동성 위기</i>
관세는 단순히 비용을 증가시키는 문제를 넘어서, 기업을 단기간에 유동성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대미 수출 대금의 입금이 지연되거나, 납품업체, 수입업체, 금융기관의 추가 보증 요구로 인해 자금 회전이 급격히 악화될 경우, 생산 중단은 물론 인건비 지급조차 어려운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유동성 위기의 심각성은 장부상의 숫자만으로는 법률가를 포함한 비전문가에게 쉽게 전달되지 않는 면이 있어, 실제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법적 판단에서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상판결 사안에서는 정리해고 당시 예상하였던 현금부족(부도)이 왜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는지 쟁점이 되었다. 구조조정 실행 전 예상하였던 현금 부족 상황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실제로 구조조정이 실행되면서 비용 절감을 이루었고, 이 회사에 원자재를 공급하는 국내 철강 대기업이 대금납부를 유예하여 주었기 때문이었는바, 이러한 사정도 변론과정에서 언급되었다.
<i># 계속적</i>·<i>구조적 위기</i>
관세로 인한 경영상 위기가 기업의 구조조정을 불가피하게 할 정도로 계속적, 구조적 위기인지도 문제될 수 있다. 이는 미국정부의 변덕에 따라 즉각적으로 부과된 관세일 뿐 곧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세정책은 조변석개하더라도 한번 타깃이 된 기업은 쉽게 풀려나기 어렵다. 게다가, 대부분의 국가는 WTO 판정을 존중하므로 이를 통한 조속한 해결을 기대할 수도 있으나 미국은 그렇지 않다. 결국 대상판결 사안에서도 N사는 미국 내에서의 소송을 통해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관세는 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재무 구조를 흔들고, 유동성 악화를 초래하며, 결국 인력 구조조정까지 요구하는 실질적 위기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도 기업과 근로자들을 지켜주지 못하면 기업은 구조조정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다. 대상판결이 관세 충격을 구조조정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한 것은 현실의 변화를 중시한 타당한 법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구자형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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