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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데이터 요구 급증…한국형 ESG 플랫폼 구축 시급

입력 2025-07-03 06:00   수정 2025-07-07 13:26

[커버 스토리] ESG 데이터 시대, 디지털 경제 달군다 ③



최근 글로벌 대표 기업들이 국내 수출기업의 공급망을 대상으로 탄소 데이터 제출을 개별적으로 요구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국가청정생산지원센터는 2009년 산업통상자원부(구 지식경제부)로부터 ‘국제환경규제기업지원센터’로 지정된 이후 국내 수출 기업의 국제 환경규제 애로를 지원해왔다.

최근 들어 수출 기업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문의는 고객사가 공급 제품의 탄소배출량 측정 → 결과 검증 → 감축 계획 수립 → 감축 실적 보고 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동향은 자동차 부품, 배터리, 섬유, 전자부품, 반도체, 석유화학, 철강, 비철금속 업종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대상도 1차 협력사에서 n차 협력사로 확대되고 있다. 유럽을 시작으로 미국과 중국을 거쳐 국내 대기업도 유사한 요구를 제기하고 있으며, 정보 요청 강도 또한 점차 강해지는 추세다.

그렇다면 왜 글로벌 대표 기업들은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일까. 이는 유럽연합(EU)의 기업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과 EU 지속가능성 공시기준(ESRS)이 스코프 3(총외부배출량)까지 관리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캘리포니아 기후데이터책임법을 통해 유사한 규제를 추진 중이며, 글로벌 공급망 전반의 스코프 관리는 2027년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이러한 공급망 정보 요구 과정에서 우리 기업이 가장 크게 느끼는 애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데이터를 마련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이다. 실제로 최근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탄소배출량을 측정하는 데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 투입된 사례도 많다. 예를 들어 국내 1위 자동차 부품 업체는 공정별 에너지 측정을 위해 약 10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측정에서 그치지 않는다. ESG 정보는 대부분 실측 데이터가 아니므로 정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3자 검·인증 절차가 요구되며, 이 과정에서도 제품당 수천만 원이 소요된다.

플랫폼 통한 ‘디지털 주권’ 확보 필요

이처럼 인력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ESG 데이터 측정·보고·검증 단계는 최근 IoT, 시스템,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인건비를 절감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러나 첨단 IT 기술과 융합된 ESG 데이터를 수입국 당국이나 고객사에 제공하는 과정에서 우리 기업의 생산 및 제조 관련 세부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위험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개인정보 및 산업 데이터 보호를 위한 데이터 주권 확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으며, 일본의 ‘우라노스 에코 시스템’도 일본 산업계의 데이터 주권을 핵심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EU 자동차 산업의 대표 데이터 플랫폼인 카테나-X는 지난해 데이터 온보딩 규칙, ESG 데이터 측정·검증 기준 등의 표준을 매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우리에게 ESG 데이터 플랫폼 설계 시 데이터 주권과 기술 종속 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데이터 보유 기업에는 “내 데이터는 내가 원하는 곳에만 제공한다”는 원칙이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라우드,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AI, 플랫폼 서비스 등 데이터 송수신에 필요한 기술 영역에서 종속이 발생할 경우 향후 ESG 정보가 금융, 공공조달, 탄소시장 등과 연계되는 과정에서 데이터 제공 기업도 모르게 주권이 침해될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다 포괄적인 디지털 주권 관점에서 플랫폼 설계를 추진하고 정부와 산업계 간 긴밀한 협력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협력 체계를 효과적으로 실행하려면 카테나-X와 유사한 주요 업종별 ‘한국형 산업 공급망 데이터 스페이스’를 구축하고, 우리 산업 현실에 부합하는 디지털 환경을 조성하며, 관련 기술 개발과 표준화를 신속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향후 ESG 데이터 플랫폼의 설계, 조성 방향은 다음과 같은 요소를 반영해야 한다. 첫째,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산업 데이터의 소유자는 결국 기업이다. 자발적 참여 없이 플랫폼은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확보할 수 없다. 단순히 데이터 제공 의무만 부과하는 방식은 참여 기업의 동기를 약화시켜 장기적으로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따라서 ESG 데이터 공유를 통해 참여하는 가치사슬 이해관계자에게 실질적 이익이 돌아가는 구조 설계가 시급하다.

예를 들어 데이터를 제공한 기업이 그 대가로 고객사, 사용·폐기 단계 등 공급망 정보나 데이터를 제공받아 비용 절감, 품질 향상, 순환경제 구축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실질적 부가가치 없이 규제 기반만으로 추진될 경우 핵심 기업의 지속적인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다.

경제성 있는 데이터 생태계 중요

둘째, 기업의 자산으로서 데이터에 대한 편익과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ESG 경영의 기본은 지속가능성과 경제성을 병행하는 것이다. 아직 경제적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에 추가 비용과 인력을 요구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ESG 데이터를 자발적으로 측정, 제공하는 기업에 충분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이 안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의 기술적·재정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셋째, 정부는 ESG 데이터 플랫폼 설계 초기부터 디지털 주권 확보 관점에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정부가 AI 주권을 강조하듯 ESG 데이터 영역에서도 데이터의 국제 호환성은 유지하되 저장·활용·통제 권한은 국내 산업계에 부여하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관계 부처 간 협업 체계를 갖추고 민간 중심 생태계 조성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EU와 일본 등도 ESG 데이터 플랫폼을 단순 탄소 규제를 넘어 국가 산업 경쟁력 확보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하고 준비 중이다.

ESG 데이터는 산업 간 융합 특성이 강하기에 특정 부처 주도로는 한계가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행정안전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 부처가 기능 중심의 협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국내 산업계 역시 ESG 데이터 요구가 현실화되는 지금 플랫폼 설계 방향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탄소 다배출 업종(철강, 석유화학 등)과 글로벌 공급망 비중이 높은 업종(자동차, 배터리, 전기전자,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은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 우선 반영할 필요가 있다.

ESG 데이터 플랫폼은 단순 보고 의무를 넘어 한국 산업 생태계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인프라다. 이를 위해 디지털 및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고,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며 차별화된 핵심 기능과 서비스를 통해 실질적 가치를 제공하는 구조로 설계되어야 한다. 정부와 산업계는 긴밀하게 협력해 지속가능하고 국제 경쟁력을 갖춘 ESG 데이터 플랫폼 생태계 구축을 위한 논의를 본격화할 시점이다. 이제 ESG 데이터 플랫폼은 정부 주도의 정책 과제를 넘어 산업계의 전략적 투자와 협력으로 발전해야 한다.

신호정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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