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경북 국립경주박물관 중앙마당에선 오는 10월 말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만찬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포클레인 2대가 쉬지 않고 흙을 퍼 올렸고 근로자 13명은 터를 다지는 작업에 여념이 없었지만 행사 4개월을 남겨둔 현재 공정은 10%에 불과하다. 이곳에서 약 8.6㎞ 떨어진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 부지에 조성 중인 미디어센터 역시 철골 골조만 세워진 채 기초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25일 경상북도에 따르면 만찬장 부지 선정은 당초 작년 12월까지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월정교, 황룡원, 동궁과 월지 등 네 곳이 후보로 거론됐으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정부 의사 결정이 사실상 멈추면서 결정이 미뤄졌다.경상북도 APEC 준비지원단은 작년 11월부터 중앙정부에 만찬장 부지를 결정해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다. 결국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월 10일 현장을 둘러본 뒤 같은 달 21일 총리 주재 회의에서 약 3개월 만에 국립경주박물관 중앙마당이 최종 부지로 확정됐다. 이후 유물 발굴 조사와 실시설계 등을 거쳐 5월 말이 돼서야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APEC 정상회의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만찬장 공사는 시작됐지만 공간이 협소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하다. 중앙마당에 건설되는 만찬장은 약 2000㎡로 600명을 수용하게 된다. 1인당 확보 면적은 3.3㎡다. 2005년 부산 APEC 당시 만찬장으로 활용된 벡스코 1전시장(4396㎡·1000명 수용)이 1인당 약 4.4㎡를 제공했던 것보다 좁다. 만찬장 내부에 공연 무대까지 들어서면 실제 체감 면적은 더 줄어든다.
행사 기간 취재진 4000여 명이 이용할 국제미디어센터 공정도 30%에 그친다. HICO 부지에 새로 짓는 이 시설은 행사 한 달 전 완공이 목표다. 그러나 장마와 태풍 등 기상 악화 시 공사 지연이 우려된다. 경북도 관계자는 “정상회의장은 HICO 내부 리모델링으로 기상 영향을 덜 받지만 국제미디어센터는 야외 공사이기 때문에 장마 기간 폭우가 오면 공사가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각국 정상과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묵을 숙소(PRS·프레지덴셜 로열 스위트)도 수요에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상북도는 기존 호텔의 PRS 16개를 정비하고 기존 객실 리모델링을 통해 9개를 추가로 마련할 계획이다. 이 중 코모도호텔은 6월에 발주가 이뤄져 아직 착공조차 못한 상태고, 코오롱로텔은 최근 착공에 들어갔다. 이 밖에도 경상북도는 준PRS 10개와 스위트룸 300개를 7월 말까지 확보할 방침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이번 APEC 행사 기간 CEO만 약 700명이 경주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인 전체 규모는 최대 3800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경상북도가 예상하는 인원인 1700명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규모다. 경상북도가 준비한 PRS와 스위트룸을 전부 동원해도 대한상의가 예상하는 CEO를 수용하기에는 크게 부족해 자칫 숙박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주에는 5성급 호텔이 힐튼경주(330실)와 라한셀렉트(440실) 두 곳뿐이다. 경상북도는 낡은 시설을 보완하기 위해 소노캄과 더케이호텔 전면 리모델링에 착수했으나 나머지 호텔은 PRS에 한해 제한적 리모델링만 하기로 했다. 대한상의는 부족한 고급 객실을 보완하기 위해 부산·울산 등 인근 지역 호텔을 이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경주 숙소 대부분이 가족여행이나 기업 연수용으로 설계돼 글로벌 기업인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고급 객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2023년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 방한 당시 서울~부산 구간 무정차 KTX를 운행한 바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서울역~경주역 노선에서 KTX·SRT 증편, 전용 열차 투입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아직까지 정확한 방문객 수요를 예측하기 어려워 구체적인 계획 수립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경주=김다빈/오경묵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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