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상은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환경과 과장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데이터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탄소를 포함한 기업 ESG 데이터는 이제 규제 준수 여부를 넘어 투자 유치와 협력사 선정 등 기업 간 거래의 핵심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ESG 데이터의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산업 데이터가 지닌 경제적가치와 전략적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산업 공급망 전반의 ESG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연결할 수 있는 ‘산업 데이터 플랫폼’ 구축에 본격 착수했다.
2024년 10월부터 플랫폼 설계를 위한 용역이 시작됐고, 현재 해당 용역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그렇다면 이 플랫폼 구축의 실질적 목적은 무엇일까. 플랫폼 설계를 총괄하는 이상은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환경과장은 “인공지능(AI) 시대 산업 경쟁력은 데이터를 누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며 “산업 데이터를 인공지능 전환(AX)의 핵심 자산으로 삼기 위한 첫걸음이 바로 산업 데이터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탄소 문맹’ 탈피 위한 플랫폼
한국형 디지털 제품 여권(DPP) 대응 플랫폼은 단순한 탄소감축 도구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디지털 생존 전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과장은 “2023년 초, 글로벌 바이어의 탄소 정보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납품처를 잃었다는 업계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었다”며 “이대로는 수출길이 막힐 수 있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플랫폼 기획을 본격화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중소·중견 협력업체의 대응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은 정부의 정책 전환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RE100이나 ESG 규제가 대기업만의 이슈로 인식되던 시기였지만, 실제로는 협력업체까지 압박받는 상황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로부터 DPP 가이드라인 개발 요청이 산업부에 전달되면서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들어갔다. “초기에는 어느 부처도 명확한 소관이라 보기 어려워 주저하던 사안이었지만, 수출 중심 국가인 한국이 더 늦어질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산업부가 책임을 맡았다”고 했다.
산업부는 플랫폼 설계와 실증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채택했다. 정책 설계는 법무법인 김앤장이, 기술 구현은 SK AX가 맡아 로드맵과 시스템 구조를 마련하고 있다. 동시에 대한상공회의소는 업계에 플랫폼을 알리고 수요를 취합하는 역할을 맡았다. 자동차, 디스플레이, 배터리, 섬유 등 5대 업종을 중심으로 우선 구축되며, 현재 약 145억 원 규모의 기술 실증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초기 플랫폼 구축은 2027년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과장은 “이 플랫폼은 단순히 데이터를 모아두는 창고가 아니라, 기업 간 데이터가 오가는 통로 역할을 한다”며 “데이터스페이스 방식으로 기업의 영업비밀을 보호하면서도 자율적 참여를 유도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EU, 일본 등과의 기술 협력과 표준 상호 인정을 통해 호환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소버린 AI처럼 데이터 주권을 보호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플랫폼 실증 대상 업종은 유럽연합(EU)의 DPP 도입 일정과 한국의 수출 비중을 고려해 선정했다. 배터리 규정은 2027년 2월부터 시행되며, 가전·자동차·철강·섬유 등도 탄소발자국 규제에 포함될 예정이다. 이 과장은 “해당 업종은 규제 노출 시점이 빠르고 수출 의존도가 높아 우선 실증을 추진하게 됐다”며 “구체적인 유스 케이스를 확보해 향후 전 산업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에는 가격과 품질이 주요 거래 기준이었다면, 앞으로는 ‘환경 경쟁력’이 그에 준하는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다양한 제조업이 고르게 발달해 산업 데이터를 통한 경쟁력 강화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플랫폼을 통해 부품별 탄소배출량, 재생 원료 사용 여부 등 정보가 디지털화되면 수요처는 최종 제품의 전체 환경 성능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국내 기업의 ESG 신뢰도를 높이고, 수출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산업 데이터를 AX로 활용해야
이상은 과장은 “제조업 경쟁력은 이제 데이터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산업 데이터는 결국 AI와 결합돼 AX의 핵심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플랫폼 이용 기업을 지원하는 탄소 산정, 검증, 컨설팅 등 다양한 데이터 기반 IT 서비스(SaaS)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이 플랫폼을 중심으로 실측 기반 탄소 데이터 분석, ESG 진단, 공급망 컨설팅 등 고부가가치 산업 데이터 서비스를 육성할 방침이다. “플랫폼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면 산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정부는 ‘산업 디지털 전환 촉진법’을 기반으로 플랫폼 구축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기술적으로는 중앙 집중형의 데이터 레이크 방식이 아닌 분산형 데이터스페이스 구조를 채택해 기업의 동의 없이 데이터가 저장·유통되지 않도록 설계됐다. 이 과장은 “미국은 클라우드 기반의 중앙 집중형 모델을 활용하지만, 우리는 데이터 주권을 보장하는 분산형 구조를 선택했다”며 “데이터 제공에 따른 보상 체계를 함께 마련해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플랫폼의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 ‘앱스토어형 데이터 거래 생태계’ 구상도 추진 중이다. 이 과장은 “IT 활용이 어려운 중소·중견기업에 IT 서비스 기업들이 SaaS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하면 산업 데이터 생태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제조업 기반의 디지털 서비스 산업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플랫폼을 통한 ESG, 탄소 데이터 측정에 그치지 않고 실효성 있는 감축을 병행 추진하고 있다. 기존에는 개별 기업을 대상으로 탄소저감 설비 교체 등을 지원했지만, 올해부터는 공급망 단위로 범위를 확대했다.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함께 참여하는 ‘산업 공급망 탄소 파트너십’ 사업을 통해 중소·중견 협력사에는 총사업비의 최대 40% 내에서 1년간 최대 30억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 과장은 “탄소나 ESG 데이터는 단순히 측정에 그쳐선 안 되고, 실질적 감축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정부는 감축 효과가 큰 사업에 예산을 집중하고, 기업의 이행 수준에 따라 인센티브를 차등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내년부터는 비용 대비 감축 효과가 높은 사업을 공개 발굴해 지원하는 경매 방식도 도입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cs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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