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벤처기업부가 납품대금연동제 도입 2년 만에 첫 직권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공정 경제' 기조에 발을 맞추는 모양새다. 중소기업들이 대·중견기업으로부터 '제 값'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취지지만 일각에선 결국 해외로의 아웃소싱만 확대시켜 국내 제조업 기반만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기부는 지난 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납품대금 연동제에 대한 첫 직권조사를 실시한 결과 3개 업체의 위반 행위를 적발했다고 26일 밝혔다. 납품대금 연동제는 납품하는 물품의 주요 원재료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변동하면 이에 연동해 납품대금을 조정하는 제도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하반기 골판지 상자의 주요 원재료인 원지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원지 가격의 상승분이 연동제를 통해 납품가격에 적정하게 반영되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 진행됐다.
골판지를 납품하는 수탁 기업 조사 요구가 없었지만 중기부는 적극행정 차원에서 작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서면, 현장, 설문 조사를 거쳤다고 밝혔다. 골판지 상자 수요가 높은 식료품제조업과 통신판매업의 매출액 상위 각각 5개 업체씩 10개 위탁기업이 대상이다.
그 결과 연동약정서 미발급 2개 업체와 약정서 미발급 1개 업체의 상생협력법 위반행위를 적발해 개선요구와 시정명령 및 벌점·과태료 부과 등의 행정처분을 했다. 위반 사례를 보면 통신판매 기업의 자회사인 중견기업 A사는 골판지 상자 납품 거래를 제조 위탁하면서 거래 기간이 만료됐음에도 불구하고 약정서를 새로 발급하지 않고 계속 거래했다.
대기업인 식료품제조업 B사와 통신판매업 C사는 골판지 상자의 단가변경 계약을 체결한 후 연동약정서를 발급하지 않아 적발됐다. 중기부는 납품대금 연동제, 불공정거래 취약 업종 등의 모니터링 결과를 연간 조사계획에 반영해 직권조사를 연 2회 이상 확대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중기부 직권 조사 발표는 이재명 정부의 중소기업 핵심 공약 가운데 하나인 ‘공정 경제’ 드라이브의 신호탄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납품대금연동제 미연동 합의 강요, 쪼개기 계약 등 납품대금연동제 우회 시도를 탈법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근절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에 지난 17일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약을 그대로 법제화한 하도급거래 공정화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중소기업계의 납품대금연동제 개선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중기중앙회가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공동으로 5대 뿌리업종 중소기업 7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납품대금 연동제 적용대상 전기료 포함 정책 수요조사’ 결과 뿌리 중기 10곳 중 9곳이 “납품대금 연동대상에 전기료를 포함해야 한다”고 답했다. 연동 대상이 '원재료'로 한정된 제도를 전기료 등 에너지 비용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중소기업계의 요구 사항이다.
중소기업이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받는다는 취지는 좋지만 일각에선 납품대금 연동제의 무분별한 강화가 국내 중소기업의 설 자리 자체를 없애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원가 구조가 복잡한 대·중견기업들이 커지는 부담에 해외 아웃소싱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적지 않아서다.
한 중견기업 대표는 "로우엔드는 물론이고 일부 하이엔드 레벨까지도 중국 제조업체가 한국보다 가격, 품질 모두 앞서고 있다는게 불편하지만 진실"이라며 "꼭 납품대금 연동제가 아니더라도 관세 전쟁 때문에라도 중국이나 베트남 등으로 생산 기반을 옮겨야 겨우 가격 맞출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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