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대체데이터 플랫폼인 한경에이셀(Aicel)의 한국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5월까지 즉석밥 수출액은 700만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이 추세대로라면 연간 수출액은 사상 최대인 2300억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즉석밥 대표 브랜드인 햇반이 수출 물량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난해 햇반 수출액은 2231억원으로 2021년(988억원)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매년 수출이 증가하며 40여 개국에서 판매되는 효자 품목이 됐다.
즉석밥의 핵심 경쟁력은 균일한 상품성에 있다. 지역과 날씨에 따라 품질이 다른 쌀로 비슷한 맛을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먼저 쌀알을 분석한다. 쌀알 상태와 수분 함유량에 따라 밥을 지을 때의 물량, 압력 등을 미세하게 조정한다. 이 과정에서만 수백 개의 데이터를 활용한다. 향긋한 밥 향기를 내기 위해 도정도 달리한다. 통상 상품성을 위해 쌀알을 좀 더 깎아내 예쁜 모양을 만드는데, 얼마나 깎는지에 따라 쌀의 산패 속도가 빨라진다. 햇반은 도정 과정에서 쌀을 최적으로 깎아내 유통기한을 늘리고 묵은쌀 냄새를 최소화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쌀을 용기에 담는 과정엔 정밀 제어 기술을 적용한다. 세 톨 정도에 해당하는 1g의 쌀, 1mL 물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쌀이 1g이라도 더 들어가면 된밥이 되고, 덜 들어가면 진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잡곡 등 다른 재료가 들어간 밥을 지을 때는 한층 더 정밀한 기술이 필요하다. 진공 가압 기술이다. 쌀과 재료 사이에 있는 공기를 모두 빨아들여 순간 진공 상태로 만든 뒤 고온 스팀을 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짧은 시간에 재료를 익히면서도 맛과 식감을 살릴 수 있다. 해외에서 다양한 재료를 넣어 판매하는 즉석밥이 인기를 얻는 이유엔 이 같은 기술이 숨어 있다. 장일상 CJ제일제당 햇반 담당 연구원은 “전 세계인이 관심 가질 만한 곡물 대부분을 어떻게 상품화할지 선행 연구했다”며 “햇반 즉석밥 기술이 세계 식품시장에서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는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용기와 뚜껑에 해당하는 필름도 기술의 집약체다. 용기는 전자레인지뿐 아니라 뜨거운 물에서도 사용 가능한 특수소재다. 산소 차단 기능도 갖췄다. 필름은 손쉽게 뜯어지면서 자국이 남지 않는 특수 접착 필름을 썼다. 이 필름은 산소뿐 아니라 수분도 차단한다. 즉석밥 내용물이 다양한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도록 하는 포장 기술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소비자가 손쉽게 뜯을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내용물을 그대로 오랫동안 보존하도록 ‘적당한 밀착력’을 구현해내는 게 각 회사의 고유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고물가 속에서 햇반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은 것도 기술 덕분이다. 햇반 가격은 1996년 출시 당시 개당 1000원에 못 미쳤다.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지금도 1000원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이 기간 쌀값이 꾸준히 올랐지만 공정 개선 등 기술 개발을 통해 원가를 원 단위로 절감해 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온·고압 과정에서 사용한 열을 공정 전반에 걸쳐 순환시켜 재활용하는 식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즉석밥 자체는 일본이 처음 개발했지만, 지금은 한국이 기술과 매출 어떤 측면에서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를 만들었다”며 “연구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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