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은 오랫동안 물적 자본의 힘에 의해 결정돼 왔다. 기반시설, 공급망, 생산설비 등 물적 자본을 누가 더 빠르게 확보하느냐가 경쟁의 승패를 갈랐고, 미국은 이를 지렛대 삼아 관세 부과, 수출 통제, 기술 이전 제한 등 다양한 수단으로 글로벌 산업 질서를 주도해 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지난 수년간 중국을 겨냥한 이 같은 통제 전략은 오히려 중국의 자립도와 기술 역량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올해 초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중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없이도 고성능 AI 모델을 구현해냈다. 화웨이 역시 반도체 장비 차단과 제품 수출 제한 등 고강도 제재 속에서도 자체 AI 칩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개발하며 기술 자립을 이뤄내고 있다. 외부에 의존할 수 없는 환경이 오히려 인재 경영을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처럼 AI 이전의 기술 경쟁이 압도적인 설비 투자를 앞세운 물적 자본 중심의 이른바 ‘치킨 게임’이었다면, 이제는 우수 인재가 보유한 전문성과 경험인 인적 자본을 극대화하려는 ‘인재 전쟁’(War for Talent)이 중심 무대가 됐다. 기술 패권의 무게추가 물적 자본에서 인적 자본으로 확연히 이동하며, 우리는 첨단산업의 경쟁 양상이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첫째, 이공계 최우수 인재들이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첨단기술 분야 대신 의대로 쏠리면서 전체 인재 풀의 기반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 둘째, 숙련된 기술력을 갖춘 현직 전문가들이 더 나은 처우와 연구 환경을 찾아 해외로 이직하면서 국내 기업의 기술 역량이 빠르게 손상되고 있다. 셋째, 해외에서 최신 기술을 습득한 유학생들이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현지에 정착함에 따라 글로벌 기술 트렌드를 흡수할 기회를 잃고 있다.
이 같은 인적 자본 축적의 삼중고는 첨단산업의 혁신 역량 저하로 직결되고 있으며, 그 여파는 점점 구체적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지연 그리고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의 부진 이면에는 장기간 누적된 인적 자본 경쟁력 저하가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비단 특정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엔지니어의 실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우려는 한국 산업 전반에서 인적 자본 수준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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