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은 도시의 정신적, 문화적 중심입니다. 영국 런던 코벤트가든에 로열오페라하우스가 있고, 프랑스 파리 중심에 파리오페라극장이 있는 것처럼요. 서울에선 세종문화회관이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서울 광화문 인근에 있는 세종문화회관. 입지와 접근성, 역사적 의미로도 이곳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세종문화회관은 ‘높은 분들이 드나드는 고급 예술 공간’이란 상징성이 강했다. 유난히 묵직해 보이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 공간이었다. 최근 몇 년 새 이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사람들이 온종일 드나들고 편하게 극장 주변에 머문다. 눈높이를 낮추고 모두를 향해 손을 내미는 ‘친절한 극장’으로 변모했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지난 24일 “일상과 예술은 경계가 없어야 한다”며 “세종문화회관이 서울시민 모두의 정신적 휴식 공간으로 기능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그 지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 세종라운지다. 다양한 문화예술 서적이 비치돼 있고 누구든 편하게 쉬었다 갈 수 있는 로비의 작은 쉼터다. “공연장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게 안 사장의 설명이다.
공연 프로그램도 대관 중심에서 벗어나 폭넓은 세대와 취향을 아우르는 자체 제작 프로그램으로 채워졌다. 그가 ‘제작극장’ 전환을 선언하면서다. 전체 극장 예산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산하 예술단체를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구조를 재정비했다. 서울시무용단을 비롯해 서울시합창단, 뮤지컬단, 극단, 오페라단, 국악관현악단 등 7개 예술단체의 제작 작품 중심으로 연간 시즌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안 사장은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나 발레단을 보면 거의 다 국공립 단체”라며 “우리는 해외 국공립 단체를 모셔 오려고 쫓아다니는데, ‘왜 그래야만 할까’라는 아쉬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고민 끝에 내놓은 작품이 고선웅 연출의 ‘퉁소소리’(극단), 정구호 패션 디자이너가 연출로 참여한 ‘일무’(무용단), 발레단의 ‘데카당스’, 뮤지컬단의 ‘다시, 봄’ 등이다. ‘퉁소소리’는 올해 백상연극상을 수상했다. 종묘제례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무용 ‘일무’는 미국 뉴욕 링컨센터 무대에 올랐다. 자체 제작 공연이 연이어 흥행하면서 세종문화회관은 2023년 극장 자체 수익 219억원을 기록했다. 법인화 이후 24년 만의 200억원 돌파이자 역대 최고 수익이다.
안 사장은 1984년 예술의전당 공채 1기로 입사했다. 이후 서울문화재단 대표, 국립극장장,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원장을 거쳐 2021년부터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몸담은 기관마다 의미있는 성과를 냈다. 노하우가 있을까. “40년 넘게 늘 ‘관객은 왜 이곳에 오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공연의 작품성 때문이든 유명 인물 때문이든 이유가 있어야 관객은 극장을 찾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4년째 재직 중인 그는 아직도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그는 “최근 서울 여의도공원에 ‘제2 세종문화회관’ 건립이 확정됐다”며 “세종문화회관도 2028년 개관 5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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