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엔 불가능할 것 같았던 3대 소재 국산화에 성공했으나 전체 반도체 공정으로 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6년간 일본 의존도를 상당 부분 낮췄고 틈새시장에선 한국이 세계 1위에 올랐다. 하지만 글로벌 반도체 패권을 좌우하는 최첨단 공정에선 여전히 미국과 유럽, 일본에 휘둘리고 있고 한 수 아래로 여기던 중국에도 뒤처지고 있다.

탄탄한 한국 제조업 생태계도 소재 자립에 큰 몫을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국내 반도체업계를 대표하는 반도체산업협회 가입사만 300여 개다. 반도체 소부장 업체에 원료나 부품을 공급하는 유관 화학·기계업체를 합하면 광의의 반도체 공급망 회사는 700곳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소재부터 부품, 장비, 제조, 후공정까지 반도체 공급망을 온전히 갖춘 나라는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대만 등 5개국 정도다.국내 기업은 틈새 전략으로 글로벌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SK실트론은 반도체 생산의 표준인 300㎜(12인치) 웨이퍼 생산에서 신에츠, 섬코와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노광 이후의 식각 공정에서 빛과 반응하지 않은 포토레지스트 찌꺼기를 제거하는 드라이 스트립 장비 분야에선 PSK가 2010년부터 램리서치, 히타치 등 글로벌 업체를 누르고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성엔지니어링(원자층 증착), 한미반도체(열압착 본더), 이오테크닉스(레이저 어닐링), 리노공업(테스트핀) 등도 세계 최고 반열에 올랐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란 견고한 수요처와 산업 인프라를 갖춘 것은 한국 소부장의 강점”이라며 “거대 고객에 대한 이해도와 탄탄한 기술력이 국산화를 넘어 세계 1등 기업을 배출한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장비산업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EUV 노광장비는 네덜란드 ASML이 100% 독식하고 있다. 반도체에 전기적 특성을 입히는 이온주입 장비는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일본 엑셀리스가 양분했다. 고난도 증착·식각을 비롯한 전공정 장비는 일본 도쿄일렉트론(TEL), 미국 AMAT, 램리서치가 지배하고 있다.
7나노 이하 공정에서 웨이퍼 표면 평탄화에 쓰이는 연마제인 CMP슬러리, EUV 노광 공정에 쓰이는 EUV포토레지스트, EUV블랭크마스크 등 핵심 소재도 90% 이상이 수입품이다. 국내에도 케이씨텍(CMP슬러리), 에스앤에스텍(블랭크마스크) 등이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아직 기술 격차가 크다는 평가가 많다.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은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세계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은 2019년 3.2%에서 지난해 2.1%로 떨어졌다.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은 이 수치가 올해 2%를 기록한 뒤 내년에 1.8%로 재차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첨단 반도체 부문에선 한 수 아래로 본 중국에 대부분 추월당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한국은 △고집적 메모리 △첨단 패키징 △전력 반도체 △인공지능(AI) 반도체 △고성능 센싱 등 5개 첨단 영역 중 패키징을 제외한 4개 부문에서 중국에 뒤졌다. 한국에선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만 세계 10위 안에 드는데, 중국은 나우라(증착) AMEC(식각) SMEE(노광) 스카이버스(테스트) 등 글로벌 10위권 업체가 즐비하다.
김 연구원은 “그동안 한국 소부장 연구개발(R&D) 사업은 모두 ‘성공’으로 끝났는데, 실패 확률이 높은 영역은 손을 대지 않은 결과”라며 “100% 대체할 순 없어도 노광장비 등 핵심 분야에 정부 차원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정환 기자
한경·산업연구원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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