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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와 길고양이 [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입력 2025-07-01 17:49   수정 2025-07-02 16:10

장마라는데, 비가 오다 말다 한다. 그제는 비가 내리고 어제는 맑았다가 오늘은 다시 비가 쏟아진다. 거실 창가에서 녹색이 짙은 한여름의 이팝나무들이 빗속에서 우쭐우쭐 춤추는 광경을 바라본다. 6월 하순에서 7월 하순까지 내리는 비를 장마라고 한다. 요즘 장마는 장마 같지가 않다. 국지성 호우가 불규칙하게 쏟아지는 것이 동남아시아 지역 우기를 닮아가는 듯하다. 기상청이 내놓은 <2022년 장마 백서>에서는 “기후 위기로 장마라는 전통적 표현의 수명이 다해 ‘한국형 우기’로 변경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힌다. 국지성 호우 현상은 있지만 여름철에 겪는 장마는 사라졌다는 뜻일까?

여기엔 구질구질 비가 내리는데…

빗속에서도 주식시장은 개장하고 농수산물 경매도 이루어질 테다. 집 없는 노숙자와 길고양이는 비를 피하느라 혼비백산하고, 택배 노동자는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위해 젖은 도로를 달린다. 여기에는 구질구질 비가 내리는데, 비행기로 서른 시간 정도를 가야 도착하는 지구 저편 안데스산맥에는 해가 떠 있을 것이다. 햇살은 항산화물질 함유량이 많다는 저 야생 베리의 잘 익은 열매에 맺힌 투명한 이슬방울을 꿰뚫고 지나갈 테다.

“공작산 수타사로/ 물미나리나 보러 갈까/ 패랭이꽃 보러 갈까/ 구죽죽 비는 오시는 날/ 수타사 요사채 아랫목으로/ 젖은 발 말리러 갈까/ 들창 너머 먼 산이나 종일 보러 갈까/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비 오시는 날/ 늘어진 물푸레 곁에서 함박꽃이나 한참 보다가/ 늙은 부처님께 절도 두어 자리 해 바치고/ 심심하면/ 그래도 심심하면/ 없는 작은 며느리라도 불러 민화투나 칠까/ 수타사 공양주한테, 네기럴/ 누룽지나 한 덩어리 얻어먹으러 갈까/ 긴긴 장마”(김사인, ‘장마’ 전문)

장마가 없다면 이런 시도 나오지 않았을 테다. 빗속을 뚫고 어딘가를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스쳐 간다. 공기는 습기를 머금고 있어 차고 축축하다. 딱히 할 일은 없는데 책 읽기도, 고전음악 듣기도 금세 싫증이 난다. 오소소 소름이 돋은 팔뚝을 문지르다가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린다.

외할머니 슬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시골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이웃으로 이사 왔다. 오갈 데가 마땅치 않은 교장 사모님이 날마다 찾아와 외할머니와 종일 민화투를 치다가 날이 저물 무렵 돌아가셨다. 장마 때는 여럿이 어울려 민화투를 치고 김치전을 부치거나 수제비를 끓여 애호박을 채 썰어 고명으로 얹어 먹었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셨고, 낯빛이 창백할 정도로 희고 고왔던 은테 안경 사모님도 벌써 돌아가셨을 테다.

오후 들어서도 빗줄기는 약해졌지만 그칠 기미가 안 보인다. 결국 오후 산책을 포기한다. 거실에서 밖을 내려다보니 장화를 신은 어린아이들이 빗물을 철벅거리며 놀고 있다. 어린아이들은 비의 무서움이나 심술궂음을 모른다. 때때로 비는 예정된 야외 행사를 망치고, 특히 가난한 이들을 괴롭힌다. 어린 시절 장마 때 국지성 호우로 물난리를 겪었는데, 천장에서 빗물이 쏟아져 양동이 따위를 바닥에 놓고 물을 받아냈다. 홍수로 저지대가 침수되고, 산사태로 도로가 끊기며, 강물이 범람해 농작물을 휩쓸어가는 광경이 뉴스 속보로 뜨곤 했다.

궂은 날씨란 겪어내야 할 시련

눈은 소리 없이 내리지만 비는 소리를 낸다. 빗방울이 어떤 물체나 땅에 떨어질 때 나오는 게 빗소리다. 양철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꽤 요란하지만 나무 잎사귀나 풀밭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크지 않다. 고양이들은 거실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에 빠져든다. 땅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조용해서 고양이들에게는 잠을 부르는 주문 같을지도 모른다.

연일 계속 내리는 빗속에서 갈 곳 없는 길고양이들은 어디에서 비를 피할까? 길고양이에게 궂은 날씨란 겪어내야 할 시련일 거다. 우리 대부분은 생태계 일원인 고양이가 딱히 어디에 살고 어떻게 먹이를 구하는지 모른다. 길고양이가 사는 곳이 ‘길’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 영리한 동물은 동네 어딘가에서 먹잇감과 잠자리를 구한다. 종일 비가 내리는 날 길고양이는 공영주택 지하실, 상가 안, 이곳저곳에 흩어진 인공 구조물에서 비를 피하고 있을 테다.

예측 불가 날씨, 인생과 닮았다

날씨는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여러 요소 중 하나다. 우선 우리 기분은 날씨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날씨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기분은 태도를 낳고 태도는 운명을 빚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순환하는 계절과 날마다 변화무쌍한 날씨가 우리 삶을 빚는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기류의 흐름, 구름 형성을 관측하고 분석하는 기구의 발달로 예전보다 예측이 정확해졌다지만 날씨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날씨를 만드는 요소가 워낙 다양하고, 그것이 기계적인 규칙성에 종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여러 날씨를 겪는다. 청명하거나 비바람 치거나 진눈깨비 치다가 금세 개어 환해진 날씨, 구름이 대기 높이 궁전처럼 피어오르거나 여린 나뭇가지를 꺾을 정도로 돌풍이 일거나 하는 날씨……. 예측하기 어렵고 사람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점에서 날씨는 인생과 닮았다.

당신은 폭우로부터 가뭄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흐르는 강에서는 같은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고 했던 기원전 6세기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던진 말이다. 이 의문문이 어떤 맥락에서 돌출되었는지는 딱히 알 수 없지만 기억에 남아 여러 번 되뇌며 의미를 해독하고자 애썼다. 가뭄과 폭우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아무도 설명할 수 없을뿐더러 분명한 사실은 사람은 날씨를 만들지 못한다는 점이다. 오직 땅과 하늘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날씨에 순응하며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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