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나요?"
연극 '디 이펙트'는 4주간의 약물 임상 실험을 이끄는 정신과 전문의 로나 제임스가 실험 참가자 면접에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4주간 폐쇄병동에서 진행되는 실험에 각기 다른 이유로 참여하게 된 코니 홀과 크리스탄 프레이, 그리고 실험을 주관하는 토비 실리와 실행자 로나 제임스, 극은 단 4명의 출연자로만 구성된다. 하지만 영상을 이용한 배경 활용으로 영화와 같은 시공간 전환을 보여주며 다채로운 볼거리로 풍성하게 채워진다.
'디 이펙트'는 항우울제 임상 테스트 참가자들과 이들을 감독하는 사람들의 사랑과 슬픔을 다룬다. 약물 시험이라는 설정을 통해 인간 감정의 본질을 탐구하는 동시에, 혼란스러운 감정들 앞에서 과연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예민하고 우울하지만 섬세하고 이성적인 심리학과 학생 코니와 자유롭고 장난기 많은 능청스러운 청춘 트리스탄은 극과 극의 성격인 듯 보이지만 밀폐된 공간과 제한된 환경 속에서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가며 점차 가까워진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트리스탄과 달리, 코니는 자신의 오감의 느낌은 물론 마음속의 목소리까지 약물에 의한 반응일 수 있다며 경계하지만 결국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다.
로나와 토비는 과거부터 인연이 있던 돈독한 사이로 보이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실험과 항우울제, 그리고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그려진다. 이로인해 이들은 복잡한 갈등을 겪게 된다. 코니와 트리스탄의 로맨스, 로나와 토비의 관계 변화, 그리고 이들 넷을 통해 '나를 살리고도 싶고, 죽이고도 싶은 뇌'와 '우울함'이라는 감정에 대한 솔직한 고찰이 이뤄진다.

예민함을 숨기며 살아가던 코니는 감정 표현에 가감이 없고, 자유로운 트리스탄을 통해 변화하며 자신의 감정을 비로소 솔직하게 바라보게 된다.
우울증을 수년간 앓아왔던 로나가 그의 병에 접근하는 방식 또한 당당하다. 문득 찾아오는 우울함에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의 변화를 더욱 세밀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약을 먹지 않는 로나를 토비는 비난한다. 그렇지만 로나는 "우리 우울한 사람들은 세상을 더 냉정하게 바라본다"고 일침을 가하며 정신 질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부순다.
'디 이펙트'의 또 다른 흥미로운 요소는 성별을 바꾼 캐스팅이다. 특히 극 중 진한 스킨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여럿 등장하는데, 성별을 바꿔선 어떤 식으로 연출될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디 이펙트'는 영국의 유명 극작가 루시 프레블의 희곡으로 2012년 런던 영국국립극장 초연 이후 '비평가협회상 최우수 신작상'을 비롯해 각종 시상식에서 최우수 여자배우상, 최우수 연극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증명했다. 한국 초연을 앞두고 세계 최초 '젠더 밴딩' 캐스팅을 통해 성별을 뛰어넘는 멀티캐스트를 시도하며 더욱 주목받았다.
젠더 벤딩의 사전적 의미는 '남녀 구분 없는 차림과 행동'으로, 배우가 자신과 다른 성별의 캐릭터를 연기하거나, 배우 성별에 맞춰 캐릭터의 성별을 바꾸는 경우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성별의 구분을 두지 않는 젠더 프리 캐스팅의 한 방식으로 알려졌다.
로나 역엔 김영민과 이윤지, 이상희가 캐스팅됐고, 토비 역엔 양소민, 박훈, 민진웅이 발탁됐다. 코니엔 박정복과 옥자연, 김주연이 트리스탄으로는 오승훈, 류경수, 이설이 각각 호흡을 맞춘다. 총 3개의 페어로 3개 버전의 '디 이펙트'를 볼 수 있는 셈이다.
'디 이펙트'는 별도의 소품이나 무대 장치 없이 무대 뒤로 나오는 영상만으로 배경과 시점을 달리한다. 배우들의 연기로 관객들을 설득해야 하는 만큼 그들의 역량이 극의 몰입도에 큰 영향을 끼친다.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믿고 보는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은 이들은 빈 무대에서 더욱 자유로운 연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디 이펙트'로 8년 만에 대학로 무대에 서게 된 김명민은 "젠더 밴딩은 다들 걱정했고, 많이 고민했다"며 "단순히 성전환으로 인한 대사의 바뀔 뿐 아니라 각자 고민한 부분이 많았고, 그게 잘 녹아내린 거 같아 만족하고 있다"고 말해 기대감을 끌어 올렸다.
민해롬 연출은 "클래식한 설정이 구조적으로 지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역동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일지 고민했고, 배우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도가 이뤄질 수 있도록 무대를 기획해보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디 이펙트'는 오는 8월 31일까지 상연된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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