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진화하면서 사람들은 공연 관람 외 다양한 이유로 공연장을 찾는다. 공연장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친구를 만나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예술의전당이 일찌감치 이 흐름을 이끌었고, 세종문화회관은 문턱을 낮춰 라운지 공간으로 관객을 맞았다. 롯데콘서트홀은 도심 한가운데 복합문화공간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실현한 사례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지난 6월 초 마포문화재단의 고영근(60) 신임 대표 인사는 눈에 띈다. 고영근 대표는 호텔신라와 삼성에버랜드를 거쳐 예술의전당에서 외식사업과 공간 운영을 총괄해온 인물이다. 그는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의 동선과 공간 경험을 먼저 고민하는 '공간 전문가'다.
고 대표는 최근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좋은 공간은 사람을 모이게 하고 추억을 만드는 공간"이라며 "마포아트센터가 누군가에게 낭만적인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가 구상하는 '낭만적인 공간'은 음악이 흐르고 커피 향이 풍기고,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 같은 곳이다. "예술의전당의 음악 분수대, 그리고 카페 '모차르트'가 생기기 전과 후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공연만 보러 가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약속 장소이자 머무는 공간이 되었죠."

고 대표는 예술의전당 야외카페 정착과 식음 서비스 혁신을 이끈 인물이다. 그는 1990년 호텔신라로 입사, 삼성에버랜드를 거쳐, 2003년 말 예술의전당에 영입되면서 외식사업과 공간 운영을 맡았다. 그가 총괄했던 카페 모차르트는 단순한 식음 공간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겐 첫사랑과 '호두까기 인형'을 보기 전 들렀던 설레는 장소였고, 누군가에겐 업무 스트레스를 식히러 달려가던 피난처였다. 때로는 우연히 유명 음악가와 조우했던 행운의 공간이기도 했다. 카페 모차르트는 2024년 말 영업 종료했지만, "그립다"는 목소리가 이어지는 건 그 공간이 누군가의 추억에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고 대표는 "마포아트센터에도 그런 낭만적인 공간이 들어서야 한다"며 '일상과 예술이 조우하는 장소'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드러냈다.
"예술의전당 외식사업은 2003년 직영 매장 한 곳으로 출발했지만, 2015년 매출 60억 원을 기록했고 전당 전체 예산의 약 13%를 차지하는 수익원이 됐습니다. 핵심은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든 데 있었죠."
그는 공연 관람이라는 이벤트 전후의 총체적인 문화 경험에 집중한다.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공연장으로 향하는 길, 주차장에서의 첫인상, 공연 전 들른 식당의 음식과 대화,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밤길까지, 이 모든 것이 공연을 둘러싼 하나의 '경험'입니다."
현재 마포문화재단은 공연과 축제 외에도 아카데미, 생활체육센터, 지역문화사업 등 다양한 기능을 포괄하고 있다. 약 200여 개의 체육강좌와 100여 개의 예술강좌에 연간 6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무대 위의 책방', '바이닐 페스타' 같은 특색 있는 문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고 대표는 "아트센터의 스포츠 센터를 이용하는 고객들도 많이 계시지만, 공간의 정체성을 새로 정립하는 것을 우선 과제로 본다"며 "이 공간이 조금 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광장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올해 M클래식 축제의 주제를 '낭만'으로 정했다며, "파라솔 아래 라벤더가 피고, 음악이 흐르는 광장을 기대해 달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추진할 주요 사업은 세 가지다. 첫째는 '예측 가능한 공연 루틴' 구축. 그는 "예술은 일상의 리듬이 될 때 비로소 생활 속에 자리 잡는다"고 말한다. 예술의전당의 11시 콘서트, 토요 콘서트 같은 매월 정기적인 공연을 마포아트센터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둘째는 인문예술 강좌의 정례화다. 클래식·미술·인문학 등 다양한 주제의 강좌를 통해 관객과의 깊은 접점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갤러리 맥을 활성화시키고 아트페어를 개최하는 것도 목표 중 하나다.

고 대표는 공연장 운영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충성 관객 확보와 기업 협력을 아우르는 전략도 구상 중이다. 그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연결된 문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기업의 협력이 만날 때, 문화재단은 진정한 공공 플랫폼이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운영 중인 유료회원제 '맥매니아'와 기부제도는 내년까지 1000명, 2027년까지 2000명의 유료 회원 확보를 목표로 확대할 예정이다.
한편, 서울시 마포구 대흥동에 위치한 마포문화재단은 2007년 마포구청의 출연을 받아 설립된 재단법인이다. 전문 공연장인 마포아트센터와 스포츠센터를 운영 중이다. 고 대표는 지난 5월 공개채용을 거쳐 신임 대표가 됐다. 임기는 2년이다.
조민선 기자/sw75j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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