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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그림을 그리는 시대, 손은 무엇을 남기는가

입력 2025-07-22 13:30   수정 2025-07-22 13:31

AI 기술은 이제 미술계에서도 낯설지 않은 존재다. 많은 이들이 생성형 AI에 ‘지브리 스타일로 그려줘’ 같은 요청을 하며, 몇 초 만에 완성된 이미지를 카톡 프로필로 바꾼다. AI는 예술의 효율성과 완성도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받는다. 하지만 문득 궁금해진다. 이제 사람이 손으로 만드는 건 의미가 없을까? 시간을 들여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일은 구식이 된 걸까?

정민제의 작업은 바느질과 천, 그리고 손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결과물이다. 이는 AI가 흉내 낼 수 없는 물질의 온기와 시간이 쌓인 감각을 전한다. 그의 작품에는 어머니가 밤늦게 재봉틀 앞에서 바느질하던 모습, 오래된 이불에서 풍겨오는 냄새, 시장에서 받아온 천 조각 같은 아주 구체적이고 사적인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다. 누군가 입었던 옷, 어느 집 커튼이었던 천, 버려질 뻔한 이불보가 그의 손을 거치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작가는 이 과정을 ‘시간의 레이어링’이라고 부른다. 과거 위에 현재를 겹겹이 쌓아가며, 낡은 천 위에 새 실로 스티치를 새기는 순간 과거와 현재가 만난다. 마치 오래된 집 벽지를 뜯으면 그 아래 또 다른 벽지가 나오는 것처럼, 그의 작품에서도 여러 시대의 이야기가 동시에 드러난다. 이런 시간의 켜켜이 쌓임은 그의 작업 방식, 즉 ‘있는 것으로 만들어내기’라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남은 천 조각, 자투리 실, 쓸모가 없어진 화분 등 집안 곳곳의 사소한 것들이 작업 재료가 된다. 작업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집의 자투리 공간인 지하실에 마련된 그의 작업실에서 캔버스와 천을 펼치고 자유롭게 작업한다. 완벽하지 않은 환경과 재료들이지만, 오히려 이런 불완전함이 그의 작품에 생생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집 안의 소소한 일상과 주변의 평범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작품 속으로 스며든다.



AI가 만드는 이미지는 정말 완벽하다. 하지만 정민제의 바느질에는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있다. 손이 살짝 떨리는 것, 그날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것,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들. 반복되는 바느질 동작은 명상처럼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바늘이 지나간 자국, 천의 질감, 실의 굵기 등 모든 것이 실제로 만져지고 느껴진다. 사람이니까 실수도 하고 완벽하지 않지만, 그런 불완전함이 오히려 따뜻하다. 찢어진 천들이 다시 이어지고, 버려진 조각들이 모여 하나가 되는 걸 보면 묘한 위로를 받는다.

정민제의 작업에는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소재들이 자주 등장한다. 헌 옷이나 깨진 그릇, 낡은 냄비, 친구 집에서 얻어온 작은 화초, 자투리 천 등, 대부분 소박하고 평범한 것들이다. 이런 재료들은 작가의 손을 거치며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각자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특히 집안일과 일상에 치이면서도 베란다에서 화초를 키우거나, 자투리 시간에 바느질을 하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작가는 깊은 감동과 위로를 받는다. 화초를 키우는 일, 천을 이어 붙이는 일,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작은 저항이자 치유의 과정이 된다. 알록달록한 천과 실로 만들어진 식물이나 오브제들은 진짜 생명력과 사람 손이 만든 따뜻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의 작품 곳곳에는 ‘괜찮다’, ‘고맙다’ 같은 따뜻한 메시지나 위트 있는 멘트들이 수놓아져 있다. 수세미 바느질 시리즈에서는 일상에서 반복되는 독백이나 마음속 웅얼거림을 수세미에 새겨, 끝맺지 못한 문장처럼 작품을 이어간다. 이런 글귀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고, 지친 일상을 위로해주는 진짜 힐링의 언어가 된다.





작가는 일상을 예쁘게 포장하지 않는다. 삶의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그 안에서 진짜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빠르고 완벽한 것만 좋아하는 요즘 세상에서 느림과 불완전함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잊고 있던 감각들이 되살아난다. 손끝의 촉감, 시간의 무게, 물질의 온기. 디지털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소중한 경험들이다. 찢어진 천들이 다시 만나 하나가 되는 것처럼, 우리 마음의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아물고 새로운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과정과 흔적, 불완전함과 임기응변, 그리고 서로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따뜻한 마음, 바로 이런 것들이야말로 AI 시대에 예술이 지켜야 할 가장 인간적인 가치일 것이다.

정연진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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