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0만원 이하의 소액 금융 분쟁이 벌어졌을 때 금융당국의 조정안을 소비자가 받아들이면 금융회사는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새 정부가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편면적 구속력’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면서다. 편면적 구속력은 금융사가 금융감독원 산하 기구인 분쟁조정위원회 결정을 의무적으로 따르도록 하는 조치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정기획위원회는 소액 금융 분쟁에 편면적 구속력을 도입하는 방안을 국정과제에 반영하기로 했다. 금융소비자가 분조위 조정안을 수락하면 그 자체로 재판상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지금까지는 소비자가 조정안을 받아들여도 금융사가 거부하면 조정이 성립되지 않고 소송으로 이어졌다.
편면적 구속력 제도 도입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새 정부가 국정과제에 관련 내용을 담아 제도 도입에 한층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 여권 관계자는 “정부·여당 내에서 제도 도입에 공감대가 큰 만큼 신속하게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기획위 내부에서 편면적 구속력을 적용하는 대상으로 ‘1000만원 이하 소액 분쟁’을 유력하게 논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 금액 한도를 2000만원 이하로 하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기준 금액이 너무 높으면 금융사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소액 분쟁 기준 등 세부 요건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개별 건으로 보면 소액이지만 전체 상품 적용땐 리스크 커"
금융소비자가 금융사를 상대로 법적 다툼을 벌일 경우 버텨내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가 정치권 안팎에서 나왔다. 국정기획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으로 참여한 김은경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금융사고가 발생해도 소비자 피해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분쟁 조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편면적 구속력 도입이 시급하다”고 했다.
영국 독일 호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분쟁조정기구 결정에 편면적 구속력을 부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도 편면적 구속력을 도입하는 것이 국제적 정합성에 부합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소비자 보호라는 취지에 공감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금융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정안이 나오더라도 대항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아무리 소액 사건으로 제한한다고 해도 민간기구인 금감원 결정에 무조건 따르라고 하는 것은 헌법상 권리인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라임펀드 전액 배상이나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배상 등 정치권 입맛에 맞는 결정이 쏟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분쟁 민원이 많은 보험업권과 금융투자업권은 벌써 편면적 구속력 도입에 따른 영향을 따지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특정 상품에 대한 조정안이 나오면 금융사는 같은 상품을 보유한 모든 고객에게 조정안을 적용해야 한다”며 “개별 분쟁 건이 소액이라도 회사 입장에선 많게는 수백억원의 배상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악성 민원인(블랙컨슈머) 문제 등 도덕적 해이가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일부 악성 민원인이 승소 가능성과 상관없이 분쟁조정을 신청하는 등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편면적 구속력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연착륙을 위한 장치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본에선 편면적 구속력 제도를 시행하되 금융사가 조정안이 나온 뒤 1개월 안에 소송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영국은 금융사가 분쟁조정 과정상 공정성이나 합리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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