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이 하늘의 도라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 사실상 중국의 첫 역사서인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총 130편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절반이 넘는 70편을 <열전(列傳)>이 차지한다. 분량상으로도, 내용상으로도 <사기>의 핵심 자리를 꿰찬 게 <열전>이다. 중국의 문호 루쉰이 “역사가의 빼어난 노래”라고 격찬했을 정도로 문학적 완성도도 높다. 중국 역대 24사(史) 중 오늘날 독립적으로 읽히는 것은 <사기열전>이 유일하다.
<사기열전>에선 자객과 유협(무법자), 골계가(남을 웃기는 사람), 점술가, 의사, 포악한 관리가 유명 정치인이나 장군과 같은 비중으로 소개된다. 입체적인 인간 군상 속에 사람들이 공감할 인생의 고뇌가 담겨 있다. <열전>의 인물 구성을 비롯해 <사기>는 여러모로 파격적인 작품이다. <본기(本紀)>에서는 제후왕에 머무른 항우를 한나라 황제인 유방보다 앞에 뒀고, 여성인 여태후의 개혁 작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왕이나 제후가 아닌 공자를 왕과 제후의 행적을 다룬 <세가(世家)>에 당당하게 편입했다.
<사기열전>의 서문 역할을 하는 것은 은나라가 주나라에 망한 뒤 절의를 지키기 위해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를 담은 ‘백이열전’이다. ‘백이열전’은 사기 전체 편 중 글자 수가 가장 적은 788자로 구성됐다. 특히 백이의 행적을 전하는 것은 215자에 불과하다. ‘백이열전’의 대부분은 사마천의 사평(史評)으로 구성됐다. 의문문과 반어문을 적절히 섞어 세상이 결코 착한 사람 편에 있지 않다는 것을 냉철한 잣대를 들이대며 보여준다.형식부터 파격적이다.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으로 이름이 운(員)이다”와 같은 정형화된 문구는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열전에서 사마천은 자신의 주관을 드러내지 않고 사실을 기술한 뒤 말미에 ‘태사공왈(太史公曰)’이라며 간략한 평가의 구절을 덧붙였다. 하지만 ‘백이열전’에선 ‘태사공왈’이란 문구가 기·승·전·결 중 ‘승’의 초두에 나온다. 자연스럽게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마천의 사평이 전하는 울림은 심상찮다. “사람들은 말한다. ‘하늘의 도는 편애하는 마음이 없어서 늘 착한 사람을 돕는다’라고. 그러면 백이, 숙제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은 어진 덕을 쌓고 고결하게 행동했어도 굶어 죽었다. … (흉포한 도적인) 도척은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고기를 얇게 저며 먹으며 흉악한 짓을 하며 제멋대로 천하를 돌아다녀도 끝내 천수를 누렸다. 그가 무슨 덕을 쌓았기 때문인가?”
하늘을 바라보고 울부짖는 듯 생생하다. 사마천은 비루한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가리는 ‘정신 승리’를 부정한다. 옳고 그름의 도리가 뒤바뀐, 악한 행동이 응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 불공정한 사회에 직설적으로 분노한다. 이런 마음속에 맺힌 울분을 발산하는 발분(發憤) 의식이 사마천이 <사기>를 쓴 목적이었다.
<사기>에는 역사 속에 명멸해간 제왕과 제후, 그리고 신분이 높고 낮은 수많은 사람의 ‘생존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치열한 생존의 과정에서 빚어진 인간의 한계와 사회의 부조리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중에서 가장 묵직한 울림을 주는 것은 <열전> 첫머리에 등장하는 ‘천도(天道)’로 표현된 ‘올바름’을 향한 절규다.
김동욱 한경매거진&북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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