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이 최초의 콘서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연출한 매기 강 감독이 주인공을 ‘무당’으로 설정한 이유다. 강 감독은 “굿이라는 건 음악과 춤으로 요괴들을 물리치는 것이다 보니 이 영화의 콘셉트와 딱 맞을 것 같았다”며 “우리나라의 무당은 거의 다 여성이기 때문에 무당과 작품을 연결시켰다”고 넷플릭스 인터뷰에서 밝혔다.

K-사주와 무속이 최근 2030세대를 사로잡더니 글로벌 시청자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저승사자가 단체로 춤을 추고 여성 아이돌 그룹으로 ‘투잡’을 뛰는 무당들이 노래로 악귀를 잡는 줄거리인 이 애니메이션은 무속의 신화적 원형을 차용했다.
신동흔 건국대 국문학과 교수는 “이집트나 그리스 등 다른 신화와 달리 한국 무속 신화는 책이나 그림 속에 담긴 문화가 아니라 현장에서 생명력을 이어온 살아 있는 구비 전승 문화”라며 “무속문화의 원형성은 기층 민중의 공동체성을 반영하고 있고 살아 있는 민중성이 현대에 ‘대중성’ 형태로 새롭게 재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신화는 무당이 굿판에서 노래와 이야기로 전해 내려온 만큼 무속 자체가 신화적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민중의 한을 풀고 공동체적 성격을 띠었던 이 전통이 오늘날에는 노래와 춤으로 팬덤을 사로잡는 K팝의 대중성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귀신과 인간이 선악구도인 서양과 달리 귀신들이 각자 서사를 가지고 있고 이를 인간이 노래와 춤으로 위로해준다는 것도 한국 무속의 특징이다. 이 노래와 춤을 담당하는 게 무당이다. 연결자인 셈이다.
신 교수는 “굿은 본래 ‘악귀의 척살’보다는 ‘좋은 기운의 회복을 통한 안녕과 평화의 수호’를 지향한다”며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가장 큰 무기는 ‘노래’인데 이는 ‘신명’으로 대표되는 전통 굿 문화”라고 말했다. 굿이 최초의 콘서트라고 말했던 강 감독의 의도가 제대로 통한 것이다.
강혜진 광운대 국문학과 교수는 “콘텐츠는 장르를 불문하고 판타지적 요소를 자주 필요로 하는데 무속은 그에 가장 적합한 원천이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웹툰·웹소설 등 대중이 쉽게 접하는 콘텐츠에서 무속적 상상력이 활발히 활용되고 이 흐름이 드라마나 영화로도 이어지며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강 교수는 “무속은 우리 고유의 문화적 요소를 풍부하게 품고 있어 한국적 판타지를 창작하기에 가장 적합한 토대가 된다”고 덧붙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뿐 아니라 미신이나 무속 신화, 사주는 다양한 콘텐츠로 재탄생하고 있다. 웹툰으로 시작해 천만 관객을 끌어모은 ‘신과 함께’나 MZ세대 무당이 등장한 영화 ‘파묘’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젊은 무당과 역술가들이 출연하는 연애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었다. 이 프로그램은 출연진의 신상 정보 대신 사주를 먼저 공개하고 출연자들이 각자의 역술적 특기를 살려 상대의 마음을 점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성인 50%가 종교가 없는 한국에서 무속이나 미신은 하나의 콘텐츠이자 즐길거리로 진화하고 있다. MBTI처럼 나를 탐구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신 교수는 “오늘날 사주나 점술, 무속 등이 관심 대상이 되는 것은 사회의 욕망과 불안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사람은 답을 찾을 수 없을 때 무망감과 좌절감을 느끼는데 전통의 무속이나 사주, 점술 등은 사람들에게 그런 ‘답’을 찾아주는 역할을 하거나 심리적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이성적으로 따지면 비합리적인 방식임이 분명하지만 인과관계에 대한 가상의 서사적 설명이 사람들 마음을 위로하고 힘을 전해주는 면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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