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기업은 국내 일자리의 85%를 차지한다. 우리 산업 경쟁력의 근간인 주조, 금형, 열처리 등 제조업 기반 뿌리 산업도 중소기업이 떠받치고 있다. 많은 한국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에 속하면서 물가상승, 경기침체 속에서도 ESG 경영은 이제 중소기업에도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EU의 ESG 규제 및 국내외 대기업의 공급망 실사 요구는 더욱 강해지는 추세다. 중소기업의 선제적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의 ESG 경영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질적 지원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혁신성장본부는 미래의 흐름을 읽고 중소기업에 새로운 기술과 공정을 도입하는 제조혁신, 상생과 공정거래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중소기업의 ESG 경영 기반 마련을 도모하고 있다.
탄소중립 요구·공급망 실사 이중고
중소기업에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은 원청 기업의 탄소중립 동참 요구 및 공급망 실사다. 지난해 11월에 실시한 중소기업 탄소중립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56.7%가 탄소중립 동참 필요성에 대해 ‘매우 및 대체로 느낀다’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실제 탄소중립을 이행하는 데는 비용 부담이 따른다. 조사한 기업의 84%가 탄소중립을 위한 추가 비용에 대해 ‘매우 및 대체로 부담된다’고 응답했다. 탄소중립과 관련해 정부 지원 정책 참여 경험이 있는 기업은 8.2%로, 10곳 중 1곳도 참여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참여하기 어려운 이유는 ‘지원사업에 대한 정보 부족’이 68.8%로 가장 컸다.
공급망 실사 대응도 녹록지 않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대기업 협력사 및 수출 기업에 ESG 공급망 실사 대응 및 지원 조사를 실시한 결과, 공급망 실사 인지 정도를 알고 있는 기업은 절반가량(53%)에 이르렀지만, 실제 이행은 어렵다고 토로했다. 거래처의 공급망 실사 요구에 대해 이행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는 전문성 및 인력 부족(60.9%)을 꼽았다. 또 기업 역량에 비해 요구 수준이 너무 높음(30.4%)도 중요한 이유였다.
이에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리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960개 중소기업 협동조합과 협력해 업종별 ESG 경영 실천을 위한 안내 지침서를 개발 중이다. 올해 말까지 가구, 패션, 플랜트건설, 전기공업, 금속, 금형, 기계공업, 단조, 표면 처리, 플라스틱, 공간 정보, 전력 기기 등 총 22개 업종에 24개 툴킷을 개발했다. 내용은 각 업종에서의 중요 주제(material topics) 및 잠재적 관리 주제를 선정하고, 이에 따른 업종의 주요 ESG 관리 지표와 실천 방안에 대해 가이드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가구 업종에서는 무엇보다 사업장 안전과 대기질, 제품 결함 및 리콜 등이 중요 주제일 수 있다. 이와 함께 폐기물, 원자재 소싱, 인권, 온실가스 에너지 등도 잠재 이슈가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EU의 산림벌채 규정, 에코디자인 규정, EU의 화학물질제도와 미국의 독성물질관리법 등 주요 관련 규제를 소개하고, ESG 실천 우수 사례도 제시된다. 가이드 관련 사업에 참여한 조합과 조합원사의 만족도는 93%, 97%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중소기업의 경우 영세한 곳은 근로시간 관리 등 기본 지침을 마련하지 않은 곳이 많아 이 사업 참여를 통해 ESG 취약 영역을 보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ESG 오프라인 교육을 실시 중이다. 환경산업기술원과는 환경안전통합관리시스템 구축과 관련한 환경규제 법령 정보를 제공하고, 온실가스배출량 산정 및 관리를 지원할 예정이다. 지난 6월에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화평·화관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대한 법률, 화학물질관리법) 통합 설명회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중소기업인들은 CBAM 첫 보고서 제출 기한과 산정 방식 기간, 검증 기관과 소요 시간 및 비용 및 데이터 관리, 협력사 관리 방안을 물으며 궁금증을 해소했다.




중소기업 에너지 전환·설비 지원 중
ESG 경영을 위해서는 기존 연료나 원료, 혹은 공정과 설비를 바꿔야 한다. 자금력과 인력이 적은 중소기업에는 큰 도전이다. 급격히 뜀박질하는 전기요금도 부담이 되고 있다. 이에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의 에너지 전환을 한전과의 협업으로 뿌리 기업의 노후화된 공동 시설을 교체하고, 에너지 효율화에 드는 사업 비용을 선지원하는 에너지 효율화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에너지 효율화 지원사업은 에너지 효율 향상 소요 비용을 한전 출자 회사인 에너지 절약 전문 기업이 전액 선부담하고, 기업은 에너지 절감 비용 등으로 3~5년간 투자비를 상환하는 사업이다. 이와 함께 보증보험료, 에너지 절감 인센티브, 기술 지원, 고효율 기기 지원금도 일정 한도 내에서 지원한다. 또 뿌리 업종 관련 협동조합의 에너지 고효율 기기 구매 비용의 80% 이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중소기업의 ESG 경영 실천에서 대기업의 노하우 이전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삼성전자, 포스코, LH, 한전의 협조를 받아 제품 기획부터 판매까지 모든 생산과정을 정보통신(ICT) 기술로 효과적으로 생산하는 스마트공장 구축 사업을 실시해 현재까지 3000개 이상 스마트공장을 구축했다.
스마트공장 구축사업은 생산공정 전문가가 직접 파견돼 작업환경 개선, 근로자 부상 방지 및 반복 동작을 줄일 수 있는 설비 교체, 시스템 관리 체계 구축은 물론 공정 레이아웃도 재정립해준다. 여기에 기계에 센서를 붙여 데이터를 수집해 개선 작업도 해나갈 수 있도록 했다. ESG 지표와 관련한 에너지 효율화 작업도 하고, 에너지 고효율 기기로 교체도 한다. 협동조합을 통해 신청하고 선정되면 포스코나 삼성의 제조 노하우를 접목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참여 중소기업의 만족도가 90% 이상일 정도로 호응이 높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ESG 경영 지원도 모색 중이다. 개별 기업이 일일이 AI를 도입하기에는 데이터, 투자 비용, 서비스 개발의 어려움 등 한계가 있기에 업종별 패키지 지원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중소기업중앙회는 업종별 AX 지원 모델을 정부에 제안하며 관련 부처, 기관과 협의 중이다. 또 중소기업의 AI 리터러시 제고를 위해 하반기 중 중소기업 활용 사례 설명회를 개최하고 사례집도 배포할 예정이다.

“뿌리 산업 상당수 탄소 다배출 업종...대폭적 지원 필요”
양찬회 중소기업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상무이사)
- 중소기업은 어떤 어려움에 봉착했나.
“값싼 중국산 제품이 들어오다 보니 전통 제조 기반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정부 조달 시장으로는 커버가 안 되는 빈틈이 생긴다. 또 중소기업은 개발 경제 시대 대기업에 납품하는 수직 계열화 체계로 전속 거래를 통해 종속된 경우가 많은데, 요구 기준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생존의 기로에 선 중소기업에 고객사의 ESG 요구 및 ESG 규제는 이중고로 다가오기도 한다. 고객사에서 갑자기 공급망 ESG 평가를 한다고 하면 당황하는 기업이 있다.”
- 중소기업이 ESG 경영에서 어려워하는 부분은.
“작은 기업들은 거버넌스 개선은커녕 노동이나 환경 부문도 손을 못 댈 정도로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근본적으로 ESG 경영을 위해서는 연료를 바꾸거나, 원료를 바꾸거나, 아니면 공정을 바꿔야 한다. 예를 들어 무연탄 화로를 탄소중립을 위해 전기로 바꿔야 하는데, 매우 어려운 문제다. 고객사에서는 ESG 경영이 충족되지 않으면 다른 업체로 바꾸는 결정을 할 수 있는데, 막상 매출 120억 원 이하 기업이 다수인 소기업은 자력으로 생산 체계를 바꾸기가 힘들다. 연료나 원료를 바꾸려면 공정 라인이 바뀌어야 하고, 연구개발(R&D)도 같이 움직여야 한다. 제재한다고 해서 당장 변하기 쉽지 않다.”
- 이런 문제를 푸는 데 어떤 것이 우선적으로 도움이 될까.
“우선적으로 상생을 고려해야 한다. 대기업들이 쌓은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것도 그 하나가 될 수 있다. 중대재해의 경우 산업현장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해야 할지, 노조와의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켜왔는지 등 분야가 다양하다. 악취가 안 나게 하려면 팬을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 물류 라인을 어떻게 해야 동선이 효율적인지 등 대기업이 생산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을 중소기업이 체화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2018년부터 상생형 스마트공장 사업을 진행 중인데, 삼성과 포스코 등 대기업이 후원해 생산 현장 전문가를 통해 작업환경 개선부터 근로자 부상 방지, 공정 레이아웃 재정립, 설비 교체 등 제조 노하우를 나누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호응이 상당하다.”
- 수출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무엇인가.
“CBAM의 경우 시장 정보도 없고, 인증 인프라도 잘 모르고, 금융 인프라도 부족한 상황이다. CBAM도 상생으로 풀어야 할 부분이 있다. 현지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한데,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에 나가 통상 규제를 풀고, 해외 한상들과의 네트워크도 활발하게 만들어주려고 한다. 수출과 관련한 사항은 현지 진출 컨설팅도 제공한다.”
- 정부는 중소기업의 ESG 경영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한국 경제가 세계와 같이 움직이기에 ESG 경영은 가야 할 길은 맞지만 중요한 것은 속도와 강도다. 이전에는 업계의 현실을 도외시하고 속도를 너무 급하게, 세게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많았다. 산업계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반영해주고, 소통해야 한다.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을 보면 정의로운 전환, 공정 전환이 나온다. 전통 제조 등 포기하기 어려운 산업도 있고, ESG 관점에서 보면 바뀌어야 하는 산업도 일부 있다. 산업이 전환될 수 있게 지원해줘야 한다. 중소기업의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하도록 인센티브나 정책이 이번 정부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 AI는 ESG 경영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나.
“AI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고 보인다. 당장 인력난에 도움이 되고, 사고 예방 측면에서도 그렇다. AI를 통해 위해 요소 감지 및 예방 기능으로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다. 또 ESG 경영과 관련해 매년 신고해야 하거나 의무화된 절차가 많은데, AI 에이전트를 통해 연계하면 서류 작업이나 행정 부분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디지털 격차처럼 대중소기업 간 AI 격차나 양극화가 생기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AI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기조를 내놓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균형 있게 AI 기업으로 나아가도록, 중소기업이 소외되지 않게 했으면 한다.”
- 특별히 ESG 경영에 신경 써야 할 업종이 있다면.
“뿌리 산업이 가장 대표적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고, 탄소 다배출 업종이다. 열처리, 도금, 주물, 단조 등은 금속을 녹이고 불을 때기 때문이다. 뿌리는 오래된 미래라는 표현을 쓴다. 산업이 생기면서 가장 먼저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 기술이 미래에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뿌리 산업이 없으면 세계 기술을 선도한다는 자동차도, 반도체도, 인공위성도 만들 수 없다. 최근 예전 3D 업종으로 기피되던 뿌리산업의 위상 제고가 되고 있지만, 이 업종들은 ESG 경영에는 매우 취약하다. 고질적 인력난에 시달리며 환경문제도 많고, 작업도 열악해 위해 요소 발생률이 높다. 이 업종에 대한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
- 에너지 비용, 특히 전기요금도 계속 올라가고 있다.
“전기료가 뿌리 산업 비용의 20~30%를 차지한다. 중소기업 납품대금연동제가 지난 2023년에 도입됐다. 주요 원재료 제조원가에 10%를 넘으면 납품단가에 연동된다. 그런데 아직 전기는 주요 원재료로 보지 않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더 확대되면 전기요금이 더욱 인상될 것으로 보여 원가 부담이 크다. 지금까지는 납품 기업이 전기료를 다 책임졌지만, 세제 지원 혹은 납품단가연동제로 대기업과 부담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지금 사용하는 전기요금 체계인 피크 요금제는 피크를 관리한다는 의미는 있지만, 피크를 바탕으로 요금을 매겨 부담이 크다. 요금 체계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 전 산업 공급망 생태계가 유기적으로 돌아가게 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뿐 아니라 1·2·3차 밴더도 그 구조 안에서 탄소중립을 위해 달성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자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공급망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정책자금을 적기에 적절하게 투입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재정 한계가 있기에 다른 기업들의 학습경험이 전달되는 것도 중요하다. 위에서 아래로 교육과 진단, 지원이 병행되며 따라와줘야 전체적 공급망의 건강도가 올라간다고 본다. AI든, 제조 혁신이든, 탄소중립이든, ESG든 상생과 협동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구현화 한경ESG 기자 ku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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