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흥인동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킬 미 나우(Kill me now)’는 장애를 가진 아들과 그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지만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히 장애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삶의 끝자락에서 존엄을 지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킬 미 나우’가 다루는 주제 중 하나는 안락사다. 뇌병변장애로 마음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고등학생 아들 조이를 돌보는 아버지 제이크는 예기치 못한 불행으로 조이처럼 휠체어 신세가 된다. 작가인 그는 더 이상 글을 쓰지도, 자신의 생리 현상을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병색이 짙어진다. 그에게 ‘킬 미 나우’라는 말은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힐 미 나우(Heal me now)’로 들린다. 그렇다고 연극이 안락사를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제이크의 여동생 트와일라는 제이크의 고통을 이해하고 안락사를 지지하는 조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아빠이기만 한 게 아니야. 내 오빠이기도 해!” 고통을 멈추게 한다는 이유로 당신은 사랑하는 가족의 호흡기를 직접 뗄 수 있는지 연극은 조심스레 묻는다. 이 작품은 관객들 사이에서 ‘오열극’으로 불린다. 아픈 가족을 향한 애틋한 사랑과 희생을 마주하다 보면 관람 전 챙겨온 휴지가 모자랄 정도다. 특히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 중 하나는 언뜻 보기에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그린다. 휠체어가 사라진 거실, 잘 차려입은 제이크와 조이는 나란히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하고 조이의 학교 성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난스럽게 베개 싸움을 하는 장면은 배우들이 슬로모션으로 연기하는데 현실에선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두 시간 넘게 어눌한 발음과 일그러진 얼굴로 조이를 연기하는 배우를 비롯해 감정 소모가 큰 역할을 맡은 모든 배우의 혼신이 담긴 연기도 객석을 숙연하게 만든다. 다행스럽게도 조이를 돕는 친구 라우디와 조이의 고모 트와일라의 존재는 중간중간 극을 밝은 분위기로 전환한다.
‘킬 미 나우’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한국에서 오랫동안 무대에 오를 연극으로 보인다. 한국은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고 있지만, 사회적 논의가 여전히 첨예한 안락사는 불법으로 규정한다. 원치 않는 생이 길어지며 존엄한 마무리에 대한 요구가 커질수록 제이크와 조이, 두 부자의 이야기는 관객들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연극은 8월 17일까지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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