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7월 18일 08:3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태광산업이 3200억원 규모 자기주식 기반 교환사채(EB) 발행으로 마련한 자금을 비롯한 자산 일부를 흥국생명 부동산 유동화에 사용할 계획을 내부적으로 세워두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태광산업은 흥국생명 주식을 갖고 있지 않아 지분상 관계가 없다. 2022년 흥국생명 콜옵션 사태 당시 불거졌던 태광산업의 흥국생명 지원에 대한 적절성 논란이 재차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1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흥국생명의 신문로사옥 유동화 사업에 참여할 예정이다. 흥국생명이 사옥을 리츠(부동산투자회사)로 매각하면 태광산업이 해당 리츠에 지분을 투자하는 식이다. 태광산업의 흥국생명 유동화 지분투자 규모는 700억원 가량이며, 태광산업 외 다른 계열사들도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다. 구체적인 투자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최근 흥국생명은 감정평가 용역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흥국생명 사옥 유동화는 보험사의 자본적정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K-ICS·킥스) 대응 차원으로 풀이된다. 흥국생명의 올해 1분기 말 기준 킥스비율은 경과조치 적용 전 153.2%, 경과조치 후는 199.5% 수준이다. 업계 평균 182.7%(경과조치 전 기준)을 하회하는 수준이어서 신용평가사들이 적극적인 자본적정성 지표 관리를 권고하기도 했다.
태광산업의 흥국생명 신문로사옥 유동화 사업 참여는 이달 초 태광산업이 밝힌 투자계획에는 없던 내용이다. 당시 태광산업은 애경산업 인수와 성수동 복합문화공간 '에스팩토리' 부지 개발, 신재생 에너지기업 인수, 블록체인 기반 금융산업 진출 등을 신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행주식총수의 24.4%나 되는 보유 자사주 전량을 교환사채(EB) 발행으로 처분하려는 시도에 논란이 들끓자 EB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태광산업은 흥국생명을 주식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지분상 관계가 없는 두 회사의 공통점은 최대주주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라는 사실이다. 비상장사인 흥국생명은 이 회장과 친인척, 일부 계열사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이 전 회장(56.3%)과 친인척들의 지분은 총 81.95%에 달해 사실상 이 전 회장의 가족회사다. 태광산업도 이 전 회장이 지분 29.48%를 가진 최대주주다.
태광산업이 흥국생명의 신문로사옥 유동화에 참여하면 2022년 흥국생명 콜옵션(조기상환권) 사태 때와 비슷한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 흥국생명은 2017년 발행한 외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해 금융시장에 파장을 일으켰다. 통상 신종자본증권은 발행사가 5년 뒤 콜옵션을 행사하는 게 관행처럼 여겨져왔기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자 흥국생명은 콜옵션을 행사하기로 했고, 자본 비율을 지키기 위해 유상증자를 추진했다. 이때 태광산업이 흥국생명 유상증자에 참여를 검토하면서 2대주주 트러스톤자산운용이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주주들의 반발에 부딪혀 최종적으로 태광산업의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는 무산됐다.
3년 전 흥국생명 사태 당시와 유사한 이번 논란은 EB 발행의 적절성에 대한 다툼으로도 번질 것으로 관측된다. 트러스톤운용은 태광산업의 현금성자산이 약 1조9000원에 달하며, 신규사업에 2조원 넘는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EB 발행까지 추진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사업 투자에 쓸 돈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최대주주 개인회사에 700억을 지원하는 건 모순처럼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태광산업은 흥국생명 유동화 리츠에 투자를 검토한 것은 맞지만 이사회 논의와 의결을 거치지 않은 내부 검토 단계라고 밝혔다. 또 유상증자 참여는 지원에 가깝지만 리츠 지분투자는 수익을 얻기 위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소유 부동산을 리츠를 통해 유동화할 때 다른 계열사들이 투자에 참여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라며 "만약 흥국생명 유동화 리츠 투자가 지원이라면 리츠에 참여하는 외부 투자자도 흥국생명을 지원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흥국생명 유상증자 때는 지분관계가 없는 계열사에 대한 자금 수혈이라는 일부 주주들의 반발을 받아들여 철회한 것이고 리츠 투자는 투자수익 창출 목적으로 검토 중인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송은경 기자 nor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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