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 공로연수에 들어간 이현주 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59·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을 가장 속속들이 잘 아는 사람이다. 199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사한 그는 지난달까지 35년간 근무했다. 홍보 업무를 전담하며 박물관 역사상 최장기간 재직 기록을 새로 썼다. 12명의 관장, 숱한 전시와 유물이 그의 곁을 거쳐 갔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살아 있는 역사’인 이 홍보관이 가장 사랑하는 유물과 공간을 소개한다.
정리=성수영 기자

뜨거운 여름날, 가장 즐겁고 시원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은 박물관입니다. 함께 천천히 걸으며 여유로운 나들이를 즐겨봅시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초입인 으뜸홀에 들어서면 고개를 들어 천장을 한번 쳐다보세요. 그 높은 천장 아래, 층층마다 전시된 유물에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가장 먼저 사유의 방으로 가볼까요.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됩니다.

반가사유상은 국립중앙박물관의 간판 소장품이자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국보입니다. 2021년 사유의 방이 문을 열기 전까지 이 두 유물이 같은 공간에 전시된 적은 세 번뿐입니다. 이제 박물관을 방문한 관람객 모두가 수시로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습니다. 앞, 옆, 뒤, 아래 다른 각도에서 찬찬히 감상하세요.
바로 옆 기증실은 편안한 소파에 앉아 벽을 가득 메운 유물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자신이 수집한 문화재를 기증한 분들 덕분에 우리는 더 많은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가 부상으로 받아 기증한 그리스 청동 투구는 그중 하나입니다. 오는 24일부터는 이곳에서 손기정 선생을 기리는 특별 전시 공간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가장 안쪽에 보이는 경천사 십층석탑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한 뒤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유물입니다. 입구에서도 보이는 높이 13.5m의 거대한 이 탑은 2층에서 볼 때 더 섬세하고 아름답습니다. 박물관이 야간 개장하는 수요일이면 저녁 8시(겨울철은 7시)마다 탑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영상이 탑 위에 상영됩니다. 10여 분의 상영이 끝나면 늘 관객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집니다.

그중 ‘영천 은해사 괘불’(보물)을 주목하세요. 화면 중심에는 만개한 연꽃을 밟고 홀로 선 부처가 자리해 있고, 그 주변으로 모란꽃과 연꽃이 꽃비처럼 흩날립니다. 아름다운 꽃과 새소리, 즐거움과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정토(淨土). 그 속에 홀로 자리한 부처와 만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저는 그 앞에서 종종 두 손을 모으곤 합니다. 이곳에 거는 괘불은 신통력이 있는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소원이 더 잘 성취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하네요.
의궤(儀軌)실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가장 ‘핫’한 공간입니다. 입구에서 사진을 찍으면 아주 멋지게 나오거든요. 그 덕에 의궤의 가치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있습니다. 의궤란 ‘의식의 본보기가 되는 책’이라는 뜻으로 왕실의 혼례와 장례, 국왕의 즉위식 등 중요한 의식과 행사를 개최한 뒤 준비·실행·마무리까지 전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입니다. 당대 최고의 도서 수준과 예술적 품격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유물입니다. 의궤실 디지털 서고에 마련된 ‘디지털 책’을 통해 책장을 넘겨보며 한글 번역본, 영문 번역본 등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답니다.
3층에는 백자실과 청자실이 있습니다. 백자실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유물은 분청사기 철화 연꽃 물고기 무늬 병입니다. 청자와 백자에서 느껴지는 완벽함과 우아함은 없지만, 친숙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 매력적입니다. 재미있고 소박한 물고기 문양을 맘껏 즐겨보세요.


청자실에서는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를 보세요. 꼭 뒤에서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뒷모습이 더 아름다운 사람처럼, 이 향로는 뒷모습이 더 매력적인 상형청자거든요. 꼬리는 납작해요. 몸과 가까운 꼬리 아래쪽엔 몽글몽글하게 문양처럼 모양이 잡혀 있습니다. 위로는 등을 덮고 목덜미까지 넓고 기다랗게 올라갑니다. 늘어진 귀 모양과 함께 너무 귀엽고 매력적이지요. 반면 앞에서는 부릅뜬 사자의 눈, 향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살짝 벌어진 입 안의 이빨들이 보입니다. 코는 들창코처럼 들려 있습니다. 조금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지요. 고려의 격조 높은 미적 감각과 절정에 오른 고려청자의 제작 수준을 보여주는 국보입니다.
자, 이제 박물관에 가서 자신만의 ‘최애 유물’을 찾아보세요.
이현주 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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