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1~2년간 정보기술(IT) 업계엔 매서운 채용 한파가 불어닥쳤다. 경력이 적은 초급 개발자 채용은 사실상 '올스톱'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다.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코딩 등 전통적인 개발자의 업무가 상당 부분 자동화됐기 때문이다. 챗GPT를 잘 활용하면 초보 개발자 2~3명이 하는 업무를 1명이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정도로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게 IT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채용플랫폼 진학사 캐치에 따르면 국내 IT 기업의 개발 직무 신입 채용 공고는 2023년 상반기 995건에서 올해 상반기 564건으로 반토막 났다.
개발 인력을 감축하는 다른 회사들과 달리 올해 개발자 채용을 크게 확대하는 기업이 있다. 금융 플랫폼 '토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직원 수가 작년 말 약 2000명이던 토스는 올해 1000명을 추가 채용해 인력을 연말까지 3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채용할 인원 중 상당수는 AI, 머신러닝(ML) 등을 담당하는 개발 인력이다. 이승건 토스 대표가 직접 사내 공지를 통해 "업계 최고의 처우로 AI·ML 인력을 적극 채용하겠다"고 밝혔을 정도다.
이유가 무엇일까. IT 기업은 생성형 AI를 이유로 채용을 줄이고, IT업종이 아닌 기업들은 경기 불확실성과 글로벌 무역분쟁 등을 이유로 채용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유독 토스만 채용을 확대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지난달 서울 역삼동 토스 본사에서 정희연 토스 최고인사책임자(CHRO)를 만나 토스의 인사 전략을 물어봤다.
▷대체 무슨 사업을 새로 펼치기에 이렇게 많은 인력을 새로 뽑습니까.
"토스는 올해 커머스와 광고 사업을 적극 확장하고 있어요. 커머스와 광고 모두 사실 하나의 사업만으로도 회사가 따로 존속해야 하는 커다란 비즈니스죠. 저희가 이 비즈니스를 모두 원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회사를 하나씩 새로 세우는 정도의 인력이 필요해요."
▷토스 앱 열어보면 이미 쇼핑과 광고 사업 활발히 하고 있는데, 더 인력이 필요한가요.
"네 맞아요. 그런데 저희 광고 제품을 만드는 기획자가 몇명인 줄 아세요? 저희는 프로덕트오너(PO)라고 부르는데, 토스 앱에 나오는 그 많은 광고를 기획하는 PO가 딱 1명이에요. 물론 기획자뿐만 아니라 개발자까지 협업해서 광고 사업을 하고 있지만, 다른 회사에 비해 굉장히 적은 인력으로 광고 사업이 운영되고 있죠. 기존 토스 팀원들의 저력이 워낙 좋아서 적은 인력으로도 지금까지 많은 성과를 거뒀지만, 저희가 원하는 수준은 더 높고 더 많은 기능을 고객에게 제공하고 싶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을 모셔야 합니다. 기획자와 개발자 모두 말이에요."
▷올해 1000명을 채용하는데, 어느 직군에서 가장 많이 뽑습니까.
"AI, ML, 데이터 등 개발자 직군에서 가장 많이 뽑아요. 저희는 '테크펑션'이라고도 부르는데, 테크펑션을 올해에만 세 자릿수 단위로 뽑을 계획입니다. 토스뿐만 아니라 토스뱅크 토스증권 등 '토스 커뮤니티' 전체 채용 인원이 1000명이에요. 워낙 직무가 다양하기 때문에 사실 조금씩만 채용하더라도 금방 1000명이 될 것 같아요."
▷챗GPT 등장을 계기로 다른 IT 기업들은 대부분 개발자 채용을 줄이고 있습니다. 토스는 왜 다른 테크 기업들과 달리 개발자 채용을 확대하나요.
"저희 회사는 인력이란 말 대신 팀원이라고 표현하는데, 팀원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회사들과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저희는 좋은 분들을 많이 채용하면 할수록 저희가 혁신할 수 있는 크기가 커진다고 생각해요. 만약 AI의 탄생 덕분에 개발자 인력을 줄여도 된다는 판단을 한다면, 그 이면엔 회사가 개발자를 비용으로 보는 관점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저희는 개발자를 비용보다는 가능성으로 보는 관점이 커요. AI로 10명이 할 일을 1명이 할 수 있다면, 9명도 기존에 90명이 하던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잖아요. 결국 10명이서 기존 100명분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생산성이 높아지면 저희가 만들고 싶은 세상까지 도달하는 시기가 더 앞당겨질 것이에요."
▷토스가 만들고 싶은 세상이 무엇이길래요.
"모든 사람들이 금융에서 평등한 삶을 누리는 세상. 이게 저희 토스가 만들고 싶은 세상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금융 서비스 이용이 상당히 어려워요. 금융 앱을 사용하려면 외국인등록증에 기재된 이름을 앱에 입력해야 하는데, 최대 네 글자밖에 입력하지 못하는 등의 제약 때문에 비대면 금융을 이용하지 못해요. 이런 말도 안 되는 불평등이 없는 세상, 모두가 똑같은 수준으로 금융 생활을 영위하는 세상을 만들려 합니다."

▷토스는 업무 강도가 높으면서도 모두가 열의를 갖고 일한다는 평가를 업계에서 받고 있어요. 그런데 인력이 단기간 급증하면 토스만의 독특한 기업문화를 유지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물론 쉽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저희가 토스의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제도적인 장치가 2가지 있어요. 우선 하나는 DRI 제도에요. 영어로 '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의 약자인데, 자기가 맡은 업무에 대해선 최종 의사결정권을 누구나 갖는 제도입니다. 토스 직원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DRI를 갖고 있어요. 토스 설립자인 이승건 대표라 할지라도 다른 직원이 DRI를 갖고 내린 최종 결정을 뒤집을 수 없어요. 이렇게 누구나 자기결정권을 갖는 구조가 모든 토스 팀원이 열의와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문화를 유지하는 원동력이에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단 속담도 있는데, DRI로 이상한 결정이 발생하진 않나요.
"그렇지 않아요. 참 재미있는 현상인데, 모두가 DRI를 가진 만큼 토스 팀원 그 누구도 하나의 업무를 혼자 완수할 수 없어요. 제품 기획자는 자신이 아무리 기획을 잘 해도 개발자의 협력을 얻어내지 못하면 서비스를 구현하지 못하죠. 그래서 DRI 제도 하에선 매우 높은 수준의 협력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누군가 DRI를 갖고 토스의 로고를 갑자기 빨간색으로 바꾸겠다고 결정하면 모두가 의아하게 생각할 거에요. 그런 독단적인 결정이 내려진 이후에는 해당 직원에 대한 신뢰의 하락이 엄청나게 큽니다. 그러면 앞으로 누구도 그 사람과 일을 하지 않으려 하고, 아무런 일도 실제로 할 수 없어요. 결국 모두가 DRI를 갖는 업무 환경 속에선 자연스러운 견제와 통제가 이뤄지고, 고도의 협력을 유도할 수 있어요. 그래서 토스의 수평문화가 자연스럽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토스의 문화를 유지하기 위한 두 번째 제도는 무엇인가요.
"채용 시스템이에요. 토스의 채용 면접은 크게 직무면접, 문화면접으로 나뉘어요. 직무면접은 말 그대로 해당 직무를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를 보는 면접이고요. 문화면접이 바로 토스의 기업문화와 잘 맞는지를 보는 절차에요. 아무리 훌륭한 개발자라 하더라도 토스의 문화와 잘 맞지 않은 분들은 입사할 수 없어요. 문화면접을 통과한 분들은 회사에서 업무를 하나하나 지시하고 통제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분들로 구성될 수밖에 없답니다."
▷문화면접은 누가 진행하나요?
"문화면접을 진행할 수 있는 면접관은 직원 중에서 별도로 양성해요. 소속 팀이나 나이에 자격 제한은 없어요. 다만 문화면접을 진행할 수 있는 면접관이 되기 위해선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받아 3단계의 내부 평가를 통과해야 해요. 이걸 다 통과하는 데까지 길게는 1년이 걸려요. 최단 기록은 3개월이긴 한데, 토스는 이만큼 면접관을 기르는 과정도 엄격하게 관리합니다."
▷지원자 면접보다 면접관 양성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네요.
"맞아요. 저희는 그만큼 채용과 기업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채용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채용된 인재는 업계 최고의 대우로 모신다는 것이 저희의 확고한 방침입니다."
▷CHRO님은 토스에 언제 합류하셨나요.
"저는 2018년 토스에 플랫폼 디자이너로 합류해서 7년 정도 지났어요. 지금도 최고디자인책임자(CDO)를 함께 맡고 있죠. 어쩌면 제가 CHRO를 맡고 있는 것이 토스의 기업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저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전통적인 HR 업무를 해본 경험이 없거든요. 토스는 연차가 몇년차인지, 나이는 몇살인지, 성별은 무엇인지,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는지를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해요."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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