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선업
세계적 탄소규제 강화에 맞서 한국 조선·해운업계가 차세대 친환경선박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HD현대중공업 등 조선사들은 액화천연가스(LNG) 추진선을 넘어 암모니아·메탄올 연료선, 나아가 원자력 추진선(SMR 선박)까지 개발하며,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배출 규제와 탄소세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해운사 HMM은 지난해 9월, 친환경 선사로 도약하기 위해 14조 원 이상 투입하겠다고 밝히며 K-조선의 탈탄소화를 견인하고 있다. “탈탄소를 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지난 4월, IMO가 2050년까지 해운 탄소배출량 ‘0’ 달성을 목표로 세계 최초로 선박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채택한 직후 해운업계 관계자들이 내놓은 반응이다. IMO는 5000톤 이상 선박이 온실가스배출 허용 기준을 초과할 경우 1톤당 최대 380달러(약 52만 원)의 탄소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사실상 친환경 연료 사용이 의무화되는 셈이다. 앞서 IMO는 2023년부터 모든 선박에 탄소집약도지수(CII) 등급제를 적용했고, 2024년부터는 연비가 낮은 선박에 대해 속도 제한 또는 운항 제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IMO 탄소규제 본격화…‘친환경선박’이 생존 좌우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HMM은 선대 교체를 가속화하고 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집약도를 2008년 대비 전체 선대는 50%, 컨테이너 선대는 70% 감축한다는 목표다. 실제로 2024년 기준 전체 선대의 온실가스 집약도는 2008년 대비 54.4%, 컨테이너 선대는 68.4%까지 낮췄다. 대형 신조선 투입과 운항 최적화 등을 통해 조기 감축 성과를 거두며, 중장기 목표 달성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조선업계도 선사들의 탈탄소 요구와 국제 규범 변화에 맞춰 친환경선박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의 조선 부문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2022년 세계 최초로 1만6000TEU급 메탄올 이중연료 컨테이너선을 수주했으며, 2023년에는 4만5000m3급 중형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2척에 암모니아 이중 연료 추진 시스템을 적용하기로 했다. 삼성중공업도 2024년 9월 암모니아 추진 컨테이너선에 대한 개념 승인을 받은 상태다. 한화오션은 암모니아 연료 가스터빈을 개발 중이며, 2027년 내 실증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암모니아는 연소 시 탄소를 배출하지 않아 차세대 무탄소 연료로 주목받고 있지만, 독성이 높고 연소 특성이 까다로워 기술 난도가 높은 편이다. 국내 조선사들은 LNG 추진선에서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암모니아 연료공급 이중 개발선 상용화를 준비 중이며, 한국선급 등과 함께 안전기준 마련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편, LNG 추진선 분야에서 한국은 이미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대형 LNG 운반선 수주량의 70%를 한국이 차지했다.
SMR·연료전지로 미래 준비…인프라 구축 과제한발 더 나아가 한국 조선업계는 원자력 추진선이라는 혁신적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2월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을 적용한 원자력 컨테이너선 모델을 공개했다. 원자력 추진선은 선박 내 소형 원자로에서 발생한 증기로 전기를 생산해 선박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장기간 항해가 가능하다.
다만 현행 국제 규범상 상선의 원자력 추진은 허용되지 않아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해운업계는 SMR 등 신형 원자로 선박에 대한 기준 제정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규제가 마련될 경우 한국 조선사들은 2030년대 이후 SMR 선박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것으로 전망된다. HD한국조선해양뿐 아니라 삼성중공업도 한국원자력연구원 등과 함께 원자력 추진선 개발에 착수한 상태다.
HD현대는 미국 테라파워와 SMR 핵심 기기 개발 협력을 맺는 등 단순한 선박 설계를 넘어 원전 기술 공급망 구축에 나서며 미래성장동력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료전지 추진선 상용화도 병행하고 있다. HD현대는 지난 6월 해운사 HMM, 한국선급과 함께 선박용 고체산화물연료전지(SOFC) 추진 시스템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SOFC는 수소나 LNG 등의 연료를 전기로 전환해 전기모터로 선박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고 탄소배출이 거의 없다.
HD현대는 2018년부터 SOFC 연구를 시작해 2024년에는 전문 자회사인 HD하이드로젠을 설립했다. 현재 평택에는 2026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SOFC 양산 공장을 건설 중이다. 최근에는 암모니아 기반 SOFC와 탄소포집 장치를 통합한 선박 추진 시스템 개발로 영역을 확장하며, 향후 수소·암모니아 연료전지 기반 대형 선박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같은 차세대 기술은 2030년대 이후 강화될 IMO 규제 대응뿐 아니라 관련 신시장 창출 측면에서도 전략적 가치가 크다. 한국 조선업계는 이미 전 세계 친환경선박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며 기술력을 입증했지만, 향후 고부가가치 선박 수요는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기후 위기 대응과 해운 강국 도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산업계와 정책당국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정부는 2022년부터 총 2540억 원 규모의 ‘친환경선박 전주기 혁신기술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또 2018년 제정된 ‘친환경선박법’에 따라 전기·LNG·하이브리드 선박 건조 시 민간에 최대 30%의 보조금과 취득세 감면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2025년에는 총 2223억 원 규모로 81척에 대한 지원이 이뤄질 예정이다.
HMM 관계자는 “친환경 설비 및 기술 도입에 따른 초기 투자 비용과 운항 비용 증가는 중장기 재무 계획상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정부 및 국제사회의 친환경 정책 인센티브를 활용하면 세제 혜택, 금융 우대 등 재무적 이익 확보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cs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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