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단어가 갑자기 낯설어질 때가 있다. 이전엔 흔히 쓰이던 ‘다국적기업’이란 표현이 그중 하나다. 본사가 있는 나라를 넘어 다른 나라에서 사업하기 위해 법인을 세우고, 물건이나 서비스를 파는 것은 자연스러운 기업의 확장 경로다.다국적기업이라는 말에 새삼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관세전쟁 때문이다. 인공지능(AI)에 다국적기업의 대표적 사례를 들어보라고 하면 제너럴모터스(GM)나 코카콜라 등을 첫손에 꼽는다. 이들 회사가 스스로를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다국적기업, 글로벌 기업으로 포지셔닝하던 시절은 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치하의 워싱턴DC에서 기업을 분류하는 첫 번째 기준은 미국 기업이냐, 아니냐다.
2차 세계대전 후 세계는 자유무역을 신봉했다. 글로벌 기업은 이 바람을 타고 각국을 누볐다. 구글 애플 등 미국 기업이 선두에 섰고, 한국의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매출과 이익이 발생하는 장소를 유연하게 결정할 수 있었고 법인세 인하 경쟁이 벌어졌다.
기세가 꺾인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부터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2년까지 전 세계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연평균 1% 미만 증가(기저추이 기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전 세계 FDI 총액(1조4000억달러)은 전년 대비 11% 늘었지만, 유럽 지역의 중개경제를 통한 금융 흐름을 제외하면 8% 감소했다. 특히 신규 프로젝트 투자는 금액 기준으로 7% 줄어들었다. 미·중 갈등으로 시장이 분절되고 보호무역이 심화되면 기업이 공격적으로 해외 투자를 늘리기는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한국은 아직 주주 자본주의가 뿌리내렸다고 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세계의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아무리 정치의 목소리가 커져도 시장경제의 원리는 그대로다. 본질이 잊히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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