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한국 전시산업을 이끈 시공테크는 2023년 위기를 맞았다. 연 매출이 1000억원을 넘었다는 이유로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바뀐 게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승격 이후 중소기업으로 한정한 국내 공공 입찰 자격을 박탈당했다.
시공테크가 국내 전시 시장의 80%에 달하는 공공시장에서 배제되자 441개 협력업체와 중소기업중앙회까지 나서서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에 한해 제한적으로 공공조달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달라”고 요청했으나 법 개정은 수년째 표류 중이다. 시공테크 창업자인 박기석 회장은 “전시 사업을 잘해서 중견기업이 됐는데 성장했으니 사업을 그만하라는 게 말이 되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예를 들어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시설 투자비에 적용되는 통합투자세액 최대 공제율은 중소기업 25%에서 중견기업 15%로 낮아진다. 연구인력개발비 세액공제율도 중소기업은 기술 종류에 따라 25~40%에 달하지만 중견기업은 8~30%에 그친다. 고용 창출 시 주는 1인당 통합고용세액공제 혜택도 중소기업은 최대 950만원을 받는 데 비해 중견기업 혜택은 450만원으로 반 토막 난다.
지원 자체가 사라지는 항목도 수두룩하다. 기업 규모 등에 따라 최대 30%까지 법인세를 깎아주는 중소기업 특별세액감면은 중견기업은 받을 수 없다. 금융 혜택도 줄어든다. 중견기업이 중소기업에 비해 수익성이 좋지만 조달금리는 오히려 높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중견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4.8%로 중소기업(3.7%)보다 1.1%포인트 높았다. 하지만 같은 기간 중견기업의 평균 이자율은 연 5.7%로 중소기업(4.4%)보다 1.3%포인트 높았다.
중소기업은 과밀억제권역, 성장관리권역, 자연보전권역 등에서 공장을 신·증설할 수 있지만 중견기업은 그럴 수 없다. 수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80%가 넘는 한 중견기업이 대표적 예다. 이 기업은 몇 해 전 100억원을 들여 수도권 지역 신규 산업단지에 공장 부지를 마련했지만 ‘중견기업은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내 공장 신설을 할 수 없다’는 조항 때문에 1년 넘게 사업을 진척시키지 못하다 결국 최근 부지를 매각했다.
기업 성장 구간에 벌칙을 매기는 체계는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커 나가는 과정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 18일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견기업의 부채 비율은 자산 5000억원과 2조원 등을 지나면서 약 2~3%포인트씩 높아졌다. 분기보고서 검토나 감사위원회 설치 등 규제가 신설되는 구간에서 기업들이 최대한 자산 기준을 넘어서지 않기 위해 투자 대신 채무 상환을 통한 자산 축소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지 교수는 “기업 규모별 차등 규제가 기업의 성장 회피로 이어지고 있다”며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을 거쳐 대기업으로 커 나가는 성장 사다리가 구조적으로 막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여러 문제에도 정부의 성장 사다리 정책은 2010년 중견기업이란 새로운 기업 틀을 만든 이후 도돌이표다. 반도체 분야의 한 중견기업 대표는 “글로벌 경쟁을 시작하는 단계인 중견기업이 되면 인재도 투자도 더 필요해지는데 지원이 급감해 중소·대기업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다”며 “중소기업 기준을 확 올리거나 중견기업이란 틀 자체를 없애는 게 기업 성장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정환/원종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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