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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찰 배제되고 공장 신설 막혀…'키 컸다고 벌 받는' 중견기업들

입력 2025-07-21 18:04   수정 2025-07-28 16:19

국내외 전시 전문 기업인 시공테크는 한국 전시산업을 개척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1988년 설립돼 서울올림픽 전야제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의 핵심 프로그램을 전담하고, 국립중앙박물관 및 서울역사박물관 개관을 주도했다.

200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한국 전시산업을 이끈 시공테크는 2023년 위기를 맞았다. 연 매출이 1000억원을 넘었다는 이유로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바뀐 게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승격 이후 중소기업으로 한정한 국내 공공 입찰 자격을 박탈당했다.

시공테크가 국내 전시 시장의 80%에 달하는 공공시장에서 배제되자 441개 협력업체와 중소기업중앙회까지 나서서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에 한해 제한적으로 공공조달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달라”고 요청했으나 법 개정은 수년째 표류 중이다. 시공테크 창업자인 박기석 회장은 “전시 사업을 잘해서 중견기업이 됐는데 성장했으니 사업을 그만하라는 게 말이 되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26개 세제 혜택 사라져
시공테크의 사례는 기업 성장 사다리 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부가 펴낸 ‘2025년 중견기업 지원시책’에 따르면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지원이 축소되거나 끊기는 세제만 26개다.

예를 들어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시설 투자비에 적용되는 통합투자세액 최대 공제율은 중소기업 25%에서 중견기업 15%로 낮아진다. 연구인력개발비 세액공제율도 중소기업은 기술 종류에 따라 25~40%에 달하지만 중견기업은 8~30%에 그친다. 고용 창출 시 주는 1인당 통합고용세액공제 혜택도 중소기업은 최대 950만원을 받는 데 비해 중견기업 혜택은 450만원으로 반 토막 난다.

지원 자체가 사라지는 항목도 수두룩하다. 기업 규모 등에 따라 최대 30%까지 법인세를 깎아주는 중소기업 특별세액감면은 중견기업은 받을 수 없다. 금융 혜택도 줄어든다. 중견기업이 중소기업에 비해 수익성이 좋지만 조달금리는 오히려 높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중견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4.8%로 중소기업(3.7%)보다 1.1%포인트 높았다. 하지만 같은 기간 중견기업의 평균 이자율은 연 5.7%로 중소기업(4.4%)보다 1.3%포인트 높았다.
“차라리 중견기업 개념 없애라”
반면 규제는 급증한다. 시공테크처럼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된 분야에는 공공조달 시장 참여가 제한된다. 중소기업 시절 받던 수의계약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중소기업은 과밀억제권역, 성장관리권역, 자연보전권역 등에서 공장을 신·증설할 수 있지만 중견기업은 그럴 수 없다. 수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80%가 넘는 한 중견기업이 대표적 예다. 이 기업은 몇 해 전 100억원을 들여 수도권 지역 신규 산업단지에 공장 부지를 마련했지만 ‘중견기업은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내 공장 신설을 할 수 없다’는 조항 때문에 1년 넘게 사업을 진척시키지 못하다 결국 최근 부지를 매각했다.

기업 성장 구간에 벌칙을 매기는 체계는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커 나가는 과정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 18일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견기업의 부채 비율은 자산 5000억원과 2조원 등을 지나면서 약 2~3%포인트씩 높아졌다. 분기보고서 검토나 감사위원회 설치 등 규제가 신설되는 구간에서 기업들이 최대한 자산 기준을 넘어서지 않기 위해 투자 대신 채무 상환을 통한 자산 축소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지 교수는 “기업 규모별 차등 규제가 기업의 성장 회피로 이어지고 있다”며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을 거쳐 대기업으로 커 나가는 성장 사다리가 구조적으로 막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여러 문제에도 정부의 성장 사다리 정책은 2010년 중견기업이란 새로운 기업 틀을 만든 이후 도돌이표다. 반도체 분야의 한 중견기업 대표는 “글로벌 경쟁을 시작하는 단계인 중견기업이 되면 인재도 투자도 더 필요해지는데 지원이 급감해 중소·대기업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다”며 “중소기업 기준을 확 올리거나 중견기업이란 틀 자체를 없애는 게 기업 성장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정환/원종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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