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동주의는 단순히 주주 친화 정책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기업이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고민하고 실행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지난 7월 8일, 서울 서초구 VIP자산운용 사무실에서 만난 김민국 대표의 말이다. VIP자산운용은 저평가된 기업을 발굴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변화를 이끄는 대표적 행동주의 펀드로 꼽힌다.
김 대표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그 변화가 시장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밸류업”이라고 강조했다.
- 상법 개정 이후 바쁘신 일정을 보내고 계실 것 같습니다.
“해외 기관들의 투자 요청과 인터뷰 제안이 부쩍 늘었습니다. 저는 대표이지만, 매니저로서 하루 업무 시간의 80% 이상을 운용에 씁니다. 전체 운용자산 약 7조8000억 원 중 2조 원 이상을 직접 운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희가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공시한 기업이 약 30곳에 이르는데요. 이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반기에 한 번씩은 만나 경영 비전을 듣습니다. 또 A4 기준 20~60쪽 분량의 기업 분석 리포트를 작성해 전달합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담은 전략적 분석입니다. 이는 저희의 투자 철학이자, 행동주의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 VIP자산운용은 가치투자 운용사이자, 행동주의 펀드로 분류되는데요.
“저희가 추구하는 행동주의는 단순한 압박이나 공격이 아닙니다. 승계, 지배구조, 재무 구조 등 대주주의 니즈를 존중하면서, 매력적인 제안을 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저희 펀드의 연간 매매 회전율은 50~60%로, 일반 공모펀드의 회전율 약 300%에 비해 매우 낮습니다. 단순한 트레이딩 수익이 아니라, 기업의 총주주수익률(TSR)을 장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구조를 만드는 것에 집중합니다. 행동주의의 초기에는 배당 제안부터 시작했고, 이후에는 자사주 매입과 소각의 세제 효율을 강조했습니다. 지금은 기업의 전략적 밸류업 자체를 함께 설계하는 단계입니다. 예를 들어, 지배구조를 어떻게 개편할지, 새로운 성장 동력은 어디서 찾을지, 국내외 유사 성공 사례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분석합니다. 내부 전략 조직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엔 실질적인 도움이 되죠. 기업을 비판하거나 훈계하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의사나 과외 선생님처럼 기업을 진단하고 조언하는 파트너가 되고자 합니다. 기본적으로 공개적인 압박보다는 기업과의 우호적 관계를 바탕으로 한 비공개 협의를 선호합니다. 물론 공개 제안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최후의 수단에 가깝습니다. 싸우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고, ‘칼은 뽑되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행동주의라 하면 흔히 ‘공격적이다’, ‘소액주주의 편이다’라는 인식이 있지만, 저희는 오히려 대주주의 파트너에 가깝죠. 고객 중에는 국민연금을 포함해 10년 이상 함께한 기관들도 많습니다. 이런 문화는 저희 내부에서도 이어집니다. VIP자산운용은 21년 동안 단 한 해도 적자를 낸 적이 없고, 최근 5년간 운용본부 정규직 입사자 중 퇴사자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 최근 롯데렌탈 유상증자 이슈를 제기하셨는데, 어떤 배경이었나요.
“기본적으로 ‘비공개·우호적·컨설팅형 행동주의’를 지향하지만 때로는 공개적 대응도 필요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HL홀딩스 사례입니다. 이 회사는 자사주 4.8%를 회사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주주 가치 훼손 소지가 매우 큰 결정이었습니다. 자사주는 원래 주주 환원을 위해 매입한 자산인데, 이를 기부하면 모두 비용 처리가 되고, 기업 가치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결국 저희는 공개 반대 입장을 밝혔고, 회사는 2주 만에 결정을 철회했습니다. 자사주는 전량 소각됐고, 이후 3년 치 주주 환원 정책이 발표되면서 주가도 안정됐습니다. 롯데렌탈은 롯데그룹이 보유하던 지분 55%를 어피니티에 주당 7만7000원에 매각한 직후, 어피니티에만 주당 2만9000원에 신주를 배정하는 유상증자를 추진했습니다. 이는 한쪽에는 고가 매각, 다른 한쪽에는 저가 발행이라는 구조로, 사실상 특정 주체에 차익을 보장해주는 셈이었습니다. 표면적인 명분은 ‘경영권 변경에 따른 회사채 조기 상환 리스크’였지만, 핵심은 지분율을 특별결의선(3분의 2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다고 봤습니다. 그 선을 넘기면 주총에서 핵심 의사결정을 단독으로 밀어붙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SK렌터카와의 합병 시, 기존 주주들은 신주가 아닌 현금만 받고 강제 퇴장당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절대 권력’을 확보하기 위한 구조였죠. 저희는 이 같은 시도가 주주 충실의무에 반한다고 판단했습니다.”
- 최근 통과된 상법 개정에 대해 총평을 하신다면요.
“이번 개정은 단순한 제도 변경을 넘어, 자본시장과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세계관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야 합의로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가 아닌 ‘전체 주주’에게 향해야 한다는 원칙이 법제화된 것은, 말 그대로 ‘착하게 살자’는 상식이 입법된 결과입니다. 특히 소액주주나 행동주의 펀드는 입증의 어려움과 홍보 정보 부족으로 법적 보호에서 소외돼 왔는데, 현 제도는 이를 바로잡는 의미가 큽니다. 롯데렌탈 사례에서 보듯 표면상의 합법을 넘어 실질적으로 특정 주주에게 유리한 구조는 이제 제동이 걸릴 수 있게 됐습니다. 다만, 제도가 바뀌었어도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집니다. 일부 상장사가 여전히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현실, 자원 사적 활용 사례는 법 변화만으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 어떤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이사의 충실의무’를 전체 주주로 확대한 것은 상징적인 진전이지만 이 한 조항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실제 시장 관행과의 괴리가 크기 때문에, 추가 입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사주 의무 소각제, 감사위원 선임 시 3% 의결권 제한, 집중투표제 도입 등 제도 전반을 ‘패키지’ 형태로 보완해야 합니다. 특히 자사주는 회사 자금으로 매입해 놓고도 소각하지 않은 채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명확한 규제가 필요합니다.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할 ‘시행령’ 수준의 세부 규정도 함께 마련돼야 합니다. 이러한 제도적 미비는 한국 자본시장에서 ‘상장 주식 디스카운트’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상장사 주식, 특히 소수주주 지분은 실제 가치의 3분의 1, 심한 경우 5분의 1 수준으로 거래되는 반면, 비상장 기업이나 경영권 거래 시장은 오히려 프리미엄이 높게 형성됩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경영권 프리미엄’이라는 왜곡된 개념에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경영자가 단지 지분을 많이 보유했다는 이유만으로 프리미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경영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나 스톡옵션 등을 통해 보상받는 구조가 일반적이죠. 황금주 역시 상장 이전, 또는 창업 단계에서 명시적으로 도입된 조건하에서만 정당성이 인정됩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상장 이후 아무런 사전 고지도 없이 대주주가 황금주를 주장하거나, 자사주를 통해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여전히 빈번합니다.”
- VIP자산운용은 초창기부터 구조적 저평가 문제에 주목해 왔는데요.
“초창기부터 ‘딥밸류 투자’를 선호해 왔습니다. 주가순자산비율(PBR) 0.2배처럼 숫자로 설명 가능한, 안전 마진이 명확한 기업을 중심으로요. 하지만 이런 전략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내재 가치가 높아도 기업이 변하지 않으면 주가는 오르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도리코 같은 기업이죠. 막대한 현금과 알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활용되지 않으니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집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단순한 가치투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습니다. 그래서 ‘밸류업 투자’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기업의 변화를 유도해 시장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도록, 우리가 직접 촉진하자는 전략이죠. 이사회나 경영진을 자극하고, 필요할 땐 주주 제안도 하고, 의결권 행사까지 나섭니다. 우리가 가진 지분이 크진 않아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입니다. 투자자의 역할도 다시 정의하게 됐습니다. 단순히 돈을 맡긴 사람이 아니라, ‘적극적인 청지기’가 돼야 한다고 봅니다.”
- 딥밸류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출발점은 ‘가능성이 있지만 외면받고 있는 기업’에 대한 애정이었습니다. 저희는 늘 시장의 메인 스트림에서 벗어나 있지만, 내재 가치가 분명한 기업들을 주목해 왔어요. 그 기업들이 단지 소외돼 있다는 이유로 저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이 늘 안타까웠고, 이들을 어떻게 시장의 중심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저희가 저평가 종목에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같은 시간과 자본을 투입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투자 수익률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좋은 평가를 받는 기업을 약간 개선하는 것보다, 50점짜리 회사를 80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훨씬 높은 수익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방향만 잘 잡아주면 빠르게 개선될 수 있는 기업들이 있는 거죠.”
- 우리나라에 행동주의 투자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행동주의는 한마디로 기업지배구조를 건강하게 만드는 ‘소금’ 같은 존재입니다. 모든 주주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행동주의는 경각심을 주는 동시에 긍정적인 자극을 유도하죠. 존재 자체만으로도 시장을 정화하는 기능이 있는 겁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지배구조 해석이나 법률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환경에서는, 경험과 역량이 있는 전문 투자자가 행동주의 역할을 맡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반 투자자나 트레이딩 중심의 기관은 이런 문제를 분석하거나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행동주의는 단지 명분만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제안이 정당하다면 이사회나 주주총회를 통해 통과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사례들이 기업 변화를 이끌어내는 토대가 됩니다. 한국 주식 시장에서 기업의 저평가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단순히 실적이 나쁘거나 업황이 불안정해서가 아니라, 기업이 시장과 소통하지 않거나 주주 가치 제고 노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기업의 펀더멘털이 좋아도 주가가 정당하게 평가받기 어렵습니다. 행동주의 펀드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듭니다. 단순히 투자를 넘어서, 기업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그 변화를 시장이 인식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런 변화가 누적되면, 시장 전체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고, 저평가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 어떤 기준으로 투자 대상을 고르시나요.
“단순히 저평가됐다고 해서 투자하지는 않습니다. 크게 세 가지를 봅니다. 첫째는 도덕성과 기업 문화, 둘째는 현금흐름과 잉여현금, 셋째는 경영진의 마인드입니다. 아무리 자산이 많아도 영업현금흐름이 전혀 없거나, 대주주가 회사 자금을 유출하는 정황이 있는 경우는 투자 대상에서 제외합니다. 반대로, 현금이 쌓여 있고 이를 잘 활용할 여지가 있는 회사, 또 도덕적으로 존경할 수 있는 경영진이 있는 회사를 선호하죠. 최소한 ‘이 회사라면 같이 성장할 수 있겠다’는 신뢰가 있어야 움직입니다. 예전에는 주가만 보고 들어간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사람’을 더 중시합니다.”
- 대표적인 투자 성공 사례를 소개해주신다면요.
“상반기 10년간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동서’였습니다. 동서식품의 모회사인 이 회사를 장기 저평가 상태에서 발굴해 10년 넘게 투자했고, 안정적인 배당과 구조를 통해 큰 성과를 냈습니다. 이후 하반기 10년은 ‘메리츠금융지주’가 핵심 포지션이었습니다. 메리츠금융지주의 경우 실적이 3.5배 올랐지만 주가는 6년간 정체돼 있었습니다. 높은 배당에도 불구하고 중복 상장 구조와 낮은 시장 신뢰가 문제였습니다. 이에 배당 확대보다 자사주 매입·소각이 효과적이라고 제안했습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자사주 정책을 강화하고, IR 조직을 신설했으며, 중복 상장을 해소했습니다. 그 결과 주가는 4~5년간 10배 상승했습니다.”
- 메리츠금융지주 이후 최근 주목하는 섹터나 기업군이 있다면요.
“현금흐름이 좋은 지주회사, 그리고 저평가된 금융주는 여전히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하나금융지주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저희가 주주로서 의미 있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주주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안도 했습니다. 풍산홀딩스, 현대그린푸드, 아세아 같은 기업은 저희가 5% 이상 지분을 공시한 사례이고, 그 외에도 여러 종목이 포트폴리오에 포함돼 있습니다. 상당수는 이미 주가가 많이 상승했지만 여전히 시장에서는 저주가수익비율(PER) 종목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평가 상태에서 이익이 성장하고 주주 환원이 뒷받침되는 구조는, 저희가 가장 선호하는 ‘강력한 조합’입니다.”
- ‘코스피 5000’ 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나요.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단계적으로 봐야 합니다. 지수 4000까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만으로도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상법 개정이나 지배구조 개선 같은 외부 요인 정비로 가능하죠. 하지만 5000은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한국 기업의 내재적 밸류, 즉 이익 체력과 산업 경쟁력이 실질적으로 성장해야 가능한 수준입니다. 단순히 주주 정책만으로는 어렵고, 진짜 기업들의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 지속 가능한 밸류업을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핵심은 ‘내재 가치의 성장’입니다. 주주 정책은 거들 뿐, 결국 기업이 스스로 벌어들이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영업이익률, 강력한 시장 지위, 재투자를 통해 더 커질 수 있는 사업 구조가 있어야 하죠. 거기에 전략적으로 설계된 주주 환원 정책이 결합돼야 주가도 지속적으로 오르고, 진정한 의미의 밸류업이 가능해집니다. 저는 ‘밸류업 투자’를 단기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을 사랑하고, 성장 가능성을 믿고, 때로는 기다리고, 때로는 설득해서 함께 성장하는 방식이죠. 단순한 투자 그 이상입니다. 기업도, 투자자도, 주주도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밸류업입니다.”- 상법 개정 이후 바쁘신 일정을 보내고 계실 것 같습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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