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이런 조치들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북한의 ‘선의’가 전제돼야 한다. 그간 한국의 역대 정부 모두 정부 출범 때 의욕적인 대북 정책들을 내놨다. ‘햇볕정책’(김대중 정부), ‘평화·번영정책’(노무현 정부), ‘비핵·개방·3000’(이명박 정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박근혜 정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문재인 정부), ‘담대한 구상’(윤석열 정부) 등 좌우 정부를 가리지 않는다. 정부마다 강조점은 다소 달랐지만, 큰 틀에서 당근을 제시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여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도모하겠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일방적 유화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다 아는대로다. 북한은 선의를 악용했을 뿐이다. 대화는 금전적 대가를 받아내는 통로로 여겼다. 그 돈줄이 끊겼을 땐 가차없이 도발로 갚아왔다. ‘대화쇼’ 뒤에서 핵과 미사일 개발에 주력했다. 그 결과 이제 수십기의 핵무기를 가지게 됐다. 상대가 있는 협상에서 주요한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패를 먼저 접을 땐 상대도 그에 합당한 대가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임기 내 성과에 급급해 조급증을 내다가 또 다시 북한에 이용당하고 핵 고도화 시간만 벌어주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개별 관광 문제도 따져봐야 할 것이 많다. 북한이 최근 원산 갈마 해양관광지구 개장 등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이 공을 들이는 이 일대 관광객 유치에 호응한다면 남북한 관계 개선 매개로 삼을 수 있다는 의도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고, 북한 해안가 관광 개발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점도 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유엔 대북 제재 위반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유엔 대북 제재 결의는 북한에 ‘벌크 캐시(대량의 현금)’ 유입을 금지하고 있다. ‘벌크 캐시’의 구체적인 기준은 없다. 이 때문에 개별 관광은 문제 되지 않는다며 문재인 정부 때도 허용을 추진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개인이 지급하는 달러 현금이 모이면 ‘벌크 캐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미국에서 제기됐다. 형식은 개별 관광이지만, 현실적으로 여행사들의 단체 관광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개별 관광 허용 이전에 따져봐야 할 대목도 있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철거한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문제다. 김정은은 2019년 10월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이라며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 자체 개발로 해외 관광객을 불어들여 달러를 벌어들이겠다는 속셈이었다. 현대아산 소유의 해금강호텔, 온천장, 온천빌리지, 금강산펜션타운, 고성항 횟집, 온정각, 우리 정부 자산인 소방서 건물, 국내 기업 아난티가 운영한 골프장 숙소동, 한국관광공사가 투자한 문화회관 등이 줄줄이 해체, 철거됐다. 우리 정부와 기업의 손실은 2조원이 훌쩍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북한이 버티면 돈을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원칙의 문제다. 금강산 관광시설 철거 뿐만 아니다. 북한이 파괴한 경의선·동해선 철도·육로 연결사업에 우리 정부 차관 1억3290만달러가 지원됐다. 북한이 무단 가동 정황이 포착된 개성공단에 들인 우리 정부와 민간의 투자 금액은 1조원이 넘는다. 북한은 우리 돈으로 지어진 남북한연락사무소 건물도 폭파시켰다. 북한 관광을 검토하기 전에, 대북 유화책을 내놓기 전에 우리 자산을 자기들 것인양 여기며 멋대로 훼손한 북한의 책임부터 분명하게 제기해야 한다. 북한의 못된 버릇을 또 눈 감고 지나간다면 앞으로도 똑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
홍영식 한국경제매거진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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