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킬 미 나우(Kill me now)'가 공연 중인 서울 충무아트센터 중극장블랙 옆 화장실에선 눈물로 여운을 씻어내는 관객들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코끝이 벌겋게 물들어 있고, 눈두덩이는 퉁퉁 부어있다.

'킬 미 나우'는 장애가 있는 조이와 작가 활동을 접고 조이를 돌보는 아버지 제이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목이 암시하듯 '안락사'를 정면으로 다룬다. 관객들 사이에선 '오열극'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렇다면 두 달간 이 묵직한 감정을 무대 위에서 쏟아내는 배우들은 어떻게 그 무게를 감당하고 있을까. 조이 역을 맡은 배우 이석준(25)과 조이 고모 트와일라 역의 배우 김지혜(34)를 충무아트센터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났다.
두 배우는 주로 뮤지컬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다. 그러다 우연히 접한 '킬 미 나우'에 강하게 이끌렸다. 이석준은 "뮤지컬이나 연극을 키워드로 종종 검색하는데 우연히 '킬 미 나우' 프레스콜 영상을 보고 짧지만 굉장히 강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모든 캐릭터의 특성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고 서사도 완벽하다고 생각했어요. 중간에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읽은 첫 대본이에요. 비일상적인 이야기인데, 오히려 일상에 가장 맞닿아 있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꼭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지혜는 2016년 '킬 미 나우' 초연 당시 객석에서 오열하던 관객 중 하나였다. 그는 "공연이 끝났는데 거의 실신하다시피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해 어셔 두 분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며 "좋은 작품이라는 인상이 있었던 만큼 출연 제의를 받고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다리던 작품이었지만 연습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일단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김지혜는 "관객일 땐 그날의 감정을 개인적으로 안고 끝내면 되지만, 관객에게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배우는 매일 연습을 이어가야 한다"며 "동료 배우들이 연기하는 장면만 바라만 봐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초반에는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석준은 "어떤 작품은 억지로 눈물을 쥐어짜야 하는데 '킬 미 나우'는 그런 걱정 없이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물이 난다"며 "커튼콜 장면에서도 관객들이 계속 울고 있으셔서 마음 편히 울 수 있는 건 다행"이라고 했다.

이석준에게 더 큰 난관은 휠체어에 앉은 채 연기하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키는 190cm에 달한다. 몸집보다 훨씬 작은 휠체어에 몸을 밀어 넣고 130분간 자유롭지 않은 움직임을 표현해야 한다. 그는 "지금은 휠체어와 한 몸이 됐지만 처음으로 전체 장면을 연이어 연기했을 때는 너무 힘들었다"며 "무대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게 얼마나 편안하고 감사한 일인지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특정 장애를 표현하려고 하진 않았어요. 어떤 분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요. 아빠, 고모 등 가족과의 유대 관계를 드러내는 것에 더 집중했어요."

어느새 한 달 째로 접어든 공연. 캐릭터가 몸에 스며든 듯, 두 배우는 각자 맡은 배역과 많이 닮아 보였다. 이석준은 '어떤 점이 배역과 닮았냐'는 질문에 조이처럼 천진함과 진지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순수함"이라고 답했다. 이어 "사춘기 때처럼 무언가를 스스로 해내고 싶어하고, 독립하려는 모습도 닮은 것 같다"고 했다. "조이는 위대한 사람이에요. 힘든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거든요. 누군가를 위하는 방법도 알고요.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예요."
트와일라는 조이를 비롯해 아픈 가족을 돌봐야 하는 인물이다. 항상 밝은 얼굴이지만 그 속에 상처가 있다. 김지혜는 "어두운 면을 숨기려는 점이 나와 닮았다"며 "그래서 트와일라와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트와일라 안의 다양한 감정을 찾아내면서 나 자신도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걸 크게 느꼈다"고 덧붙였다.

때로는 충돌하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는 고모와 조카. 김지혜는 막이 내린 뒤 트와일라가 조이에게 "다 컸네"라고, 이석준은 조이가 트와일라에게 "사랑해"라고 말했을 것 같다고 했다. 그 배경이 궁금하다면 다음달 17일까지 공연장을 찾으면 된다.
마지막으로 두 배우가 꼽는 명대사를 물었다. 이석준은 극 중 아버지 제이크가 쓴 책 <춤추는 강>의 서문을 꼽았다. "'태어나는 모든 아이는 완벽한 존재다'에서부터 '백조가 되지 않더라도 나는 이 오리를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까지 전부 다 좋아요. 조이에 대한 제이크의 사랑이 와닿는 대목이에요." 김지혜는 "'난 늘 괜찮아야 해'라는 트와일라의 말이 계속 아프게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킬 미 나우'의 작품성은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다시 눈물을 쏟게 될까 재관람을 망설이는 관객들이 많다. 이에 김지혜는 "슬픈 장면의 여파가 커서 그렇지 사실 '킬 미 나우'는 웃을 수 있는 장면도 많은 공연"이라며 "상상 이상의 이상을 보여드리겠다"고 자신했다. 이석준 배우도 거듭 강조했다. "이렇게 좋은 공연을 한 번만 보기엔 아쉽잖아요. 다음 시즌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고요. 이제 공연도 딱 한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어떤 배우로든 꼭 한번 보셨으면 해요. 물론 제가 출연하는 날 오신다면 더 감사하겠지만요."(웃음)
글=허세민/사진=임형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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