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8년, 두 천재 예술가는 프랑스 파리에서 만났을까.
연극 ‘사의 찬미’는 한국 최초 여성 화가이자 작가인 나혜석과 한반도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이 각각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을 겪은 후 파리에서 만난다는 상상에서 시작된다. 그동안 나온 동명의 소설,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파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신여성은 곧바로 친해지고,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나혜석이 윤심덕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윤심덕이 나혜석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연극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윤심덕은 일본 도쿄음악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와세다대에 재학 중인 작가 김우진을 알게 된다. ‘혐관’(혐오하는 관계)은 곧 ‘치정’으로 발전한다. 콧대 높고, 자기 할 말 똑 부러지게 하는 윤심덕은 김우진이 고향에 아내와 딸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을 굽히지 않는다.
호남 대지주의 아들인 김우진은 엄한 아버지 뜻에 따라 조혼했지만 결혼 생활에도, 부친의 가업을 잇는 것에도 뜻이 없었다. 처음엔 윤심덕의 마음을 외면하던 김우진 역시 “계속 글을 써달라”며 눈을 반짝이는 그에게 마음을 열고, 결국 두 사람은 서로가 영원히 함께할 방법을 찾으며 시모노세키항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에 오른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실종된다.
신여성과 모던 지식인의 불륜으로 볼 수 있는 두 사람의 관계는 당시에도 대서특필 됐을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사체가 발견되지 않아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신비함을 남겼다. 김우진의 아버지가 수년간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찾으러 다녔을 정도다. 러시아, 유럽에서 두 사람을 봤다는 목격담도 흘러나왔다. 연극은 이런 소문과 사실을 적절히 혼합해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일각에서 제기된 불륜과 자살 미화보다는 두 사람이 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서로를 택했는지에 집중한다. 김우진을 연기하며 연극에 처음으로 도전장을 낸 배우 윤시윤은 “실제로 심덕과 우진은 끊임없이 ‘사랑일까’, ‘사랑으로 정의해야 하나’ 이 부분을 아주 혼란스러워하며 갈팡질팡한다”며 “마냥 아름답지 않다”고 두 사람의 관계를 소개했다.
또 다른 첫 연극 도전자, 윤심덕 역의 전소민 역시 “심덕에겐 자신의 예술성을 알아보는 남자가 얼마나 소통이 잘 됐을까 싶고, 이 사람의 세상에 본인이 들어가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며 “그러다가 사랑이 됐다고 스스로 납득했다”고 설명했다.
극의 클라이맥스는 윤심덕이 작사하고 부른 노래 ‘사의 찬미’가 울려 퍼지는 순간이다. 김우진과 죽음을 결심하고 미리 가사를 썼다는 추측이 나올 정도로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한다.
이번 작품에서 입체적으로 조명되는 또 다른 인물은 ‘고향의 봄’ 작곡가로 알려진 홍난파다. 홍난파는 도쿄에서 함께 음악 공부를 하며 친해진 윤심덕을 김우진에게 소개한 인물로 묘사된다. 실제로도 윤심덕과 열애설이 불거진 홍난파는 삼각관계부터 두 사람의 관계를 전하는 이야기꾼으로 극 안팎에서 활약한다. 오는 8월 17일까지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