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학 현미경으로 본 혈액의 세포들이 쪼개지고 뭉친다. 인간의 뇌를 촬영한 데이터들은 미세한 신경 섬유 한 올까지 담아 360도 회전한다. 몸속 모든 뼈가 하나씩 나뉘어 해체됐다 만나기를 반복. 이어서 삑, 삑, 삐-----익 들려오는 전자음. 이곳은 어느 병원 수술실이 아니다. 사운드 아티스트 료지 이케다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다.
료지 이케다는 1966년 일본 기후시에서 태어난 사운드 아티스트다. 1990년대 백색 소음을 결합해 전자음악 실험을 시작했고, 데이터를 조형의 재료로 쓰며 관람객을 시청각적 ‘완전 몰입’의 상태로 이끄는 전방위 예술가다. 지난 7월 10일 광주 ACC 복합전시 3·4관에서 개막한 ‘2025 ACC포커스-료지 이케다’전은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은 ACC가 가장 오래 공들인 전시 중 하나다. 인터뷰는 물론 대중 앞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케다는 전시 개막을 위해 광주를 찾아 “나를 데이터의 작곡가로 여겨달라”고 했다.어둡고 좁은 통로에서 전시는 시작된다. 머리 위 천장에 설치된 10m 길이의 LED 화면 속 영상이 물살처럼 빠르게 지난다. 이 영상은 인간의 유전자 정보를 담고 있는 DNA 데이터를 기하학적 패턴으로 변환한 ‘data.flux[n˚2]’(2025)다. 데이터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면 또 다른 신작 ‘크리티컬 매스’(2025)와 만난다. 가로 세로 10m의 거대한 바닥 스크린에 투사된 검은 원과 흰빛이 극명하게 대비되며 쿵쿵, 전자음이 온몸을 전율케 한다.
하이라이트는 초대형 스크린 3개가 이어지는 ‘데이터-버스(date-verse)’ 3부작. 40m 길이 벽에 투사된 다양한 데이터가 춤을 춘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등에서 수집한 우주 관측 자료는 물론 인간 게놈프로젝트에서 뽑아낸 유전자 정보, 전 세계 각종 재난의 이미지, 도시 간 네트워크 지도 등이 고주파 사운드와 함께 쏟아지는 장관이 펼쳐진다. 전시는 12월 28일까지다.
광주=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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