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유럽연합(EU)이 1년7개월 만에 정상회담을 열었지만 무역, 안보 등 현안을 두고 시각차를 드러냈다. 특히 EU는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이 심각하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중국은 “유럽이 직면한 도전은 중국에서 온 것이 아니다”며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 EU에 미국이 아니라 ‘중국 편’을 들라고 압박한 것으로 분석된다.
24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과 EU는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중국 측에선 시진핑 국가주석, EU에선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대표로 나섰다. 시 주석은 “(중국과 EU의 관계가) 또 하나의 중요한 역사적 접속점에 서 있다”며 “100년에 한 번 있을 변화와 혼란이 얽힌 국제 정세에 직면해 중국과 유럽 지도자는 다시 한번 식견과 책임을 보이고 국민 기대에 부합해 역사적 검증을 감당할 수 있는 올바른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또 “중국과 유럽은 다자주의를 주장하고 개방 협력을 제창하는 건설적인 힘을 지녔다”며 “국제 정세가 심각하고 복잡할수록 양측은 소통을 강화하고 상호 신뢰를 증진하며 협력을 심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럽이 현재 직면한 도전은 중국에서 온 것이 아니다”며 “양국 간에는 근본적인 이해충돌과 지정학적 갈등이 없으며 협력이 경쟁보다 크고 합의가 이견보다 많다”고 했다.
코스타 상임의장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끝내기 위해 중국이 러시아에 영향력을 발휘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중국이 러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해 러시아가 유엔헌장을 존중하고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종식하도록 해달라”고 촉구했다.
중국과 EU는 올해가 수교 50주년째다. 양측은 그동안 중국과 EU를 오가며 정상회담을 열었다. 당초 이번 회담은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될 차례였다. 하지만 중국 측 요청으로 장소를 베이징으로 변경했다. 시 주석이 해외 순방을 꺼리면서 총리가 대참할 것으로 예상되자 EU가 장소 변경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공을 들인 것이다.
관세 외 다른 갈등도 적지 않다. 중국의 희토류 통제도 EU로선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공공 입찰을 두고도 양측이 맞서고 있다. EU는 지난달 500만유로(약 79억원)를 넘는 의료기기를 공공 조달할 때 중국 기업의 입찰 참여를 금지하고, 공공 조달 낙찰 기업의 중국산 구성품 비율을 50% 미만으로 제한했다. 이에 중국도 이달 초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4500만위안(약 85억원) 이상을 들여 의료기기를 구매하면 EU 기업 참여를 배제하기로 하는 등 보복 조치를 내놨다.
시 주석은 “유럽은 무역·투자 시장을 개방적으로 유지하고 규제하는 성격의 경제무역 도구 사용을 자제해 중국 기업이 유럽에서 투자하고 사업할 수 있도록 좋은 비즈니스 환경을 제공하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양측의 근본적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은 건 무역 격차 때문이다. 지난해 EU의 대중 상품수지는 3045억유로 적자를 기록했다. 4년 전보다 적자가 67% 늘었다. 이번 정상회담이 수교 50주년을 맞아 중국과 EU 관계를 개선하는 데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한때 제기됐지만 양측 통상 갈등이 지속하면서 기대치가 낮아졌다. 실제 이날 회담 성과도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EU 정상들의 방중 일정도 당초 이틀에서 하루로 축소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견해차로 EU가 대중 강경론으로 급선회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중국이 러시아의 전쟁 책임을 비판하기는커녕 무인기(드론) 부품 수출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지원했다는 게 EU의 판단이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김주완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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