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예술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에 일회성 후원으로 언론 기사에 기업명 끼워넣기.’ 기업의 메세나(mecenat: 문화·예술계 후원) 활동은 한때 이런 오해를 받았다. 더 이상은 아니다. 지난해 기업의 메세나 규모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5년 이상 지속된 장기 사업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섰다. 기업들이 메세나를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중장기적 기업 활동의 하나로, 예술가를 일방적 지원 대상이 아니라 협력 파트너로 인식한 결과다. 다만 장르 편중 현상과 수도권 편중 현상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1994년 한국메세나협회가 발족한 지 30년. 메세나 활동이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파트너십’으로 자리잡은 결과다. 응답 기업 중 81.9%가 ‘예술가·예술단체는 지원 대상이 아니라 협력 파트너라고 생각한다’에 긍정적으로 답했다.사업 기간도 이를 증명한다. ‘기업의 문화예술 사업 지속 기간’을 분석한 결과, 5년 이상 지속된 장기 사업의 비율이 55.4%에 달했다. ‘1년 미만’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2.6%로 전년보다 15.1%포인트 줄었다. 한국메세나협회 측은 “기업이 문화예술 지원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중장기적 기업 활동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의 메세나 활동이 정체기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한 2022년 이후 문화예술 지원 규모가 2000억원 안팎을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메세나협회 관계자는 “경기 위축과 정치 혼란 속에서도 지원 규모가 증가한 것은 고무적”이라면서도 “2022년 이후 여전히 정체 국면에 있다”고 봤다.
지원 주체별로 보면 개별 기업 부문에서는 KT&G가 2023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1위 자리를 지켰다. KT&G는 서울, 춘천, 논산, 부산 지역에서 복합문화공간 ‘KT&G 상상마당’을 운영 중이다. 국내 문화예술계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데 앞장선다. 국내 우수 단편영화를 발굴하기 위해 2007년부터 ‘대단한 단편영화제’를 운영하는 등 비주류 장르까지 폭넓게 지원한다.
기업 출연 재단 부문에서 지원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삼성문화재단이었다. 삼성문화재단은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을 운영하며 지난해에는 복합문화공간 ‘사운즈S’를 개관했다.
그런데 비주류·다원예술(약 56억원), 국악·전통예술(약 40억원), 영상·미디어(약 19억원), 연극(약 17억원), 뮤지컬(약 14억원) 분야는 기업의 지원이 줄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전체 지원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3% 미만에 불과했다. 연극의 경우 전년보다 30.7%나 쪼그라들었다.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사업 지역도 수도권(61.1%)에 집중돼 있다. 서울 지역이 48.6%를 차지하는 데다가 전년보다 11% 늘었다. 비수도권 지원은 전년 대비 8.9% 감소했다. 한국메세나협회는 “과거에 비해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폭이 넓어졌으나 여전히 복지, 환경, 교육 등에 상당 부분 국한돼 있다”고 했다.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정체 국면을 돌파하려면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메세나협회 측은 “문화예술 지원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강화, 정부 공공사업 입찰 및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시 가점을 부여하는 우대 평가제도 도입 등 정부의 실효성 있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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