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튀니지 여성의 난민 신청을 심사조차 하지 않은 출입 관리 당국의 처분은 적법했다는 하급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대법원은 난민 인정을 신청한 외국인에 대해 심사를 거부할 땐 당국이 그 사유를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하는데, 이런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봤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튀니지 국적 여성 A씨(26)가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난민 인정 심사 불회부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지난달 26일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난민법 시행령 규정상 증명 책임과 증명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면서 원고 측 상고를 받아들였다.
튀니지에 살던 A씨는 2023년 8월부터 의료 비자를 얻어 튀르키예에서 체류했다. 그러다 같은 해 11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는데,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은 A씨의 입국 목적이 불분명하다며 그를 재심실로 안내했다.
A씨는 당국에 “튀니지에서 전남편으로부터 심각한 폭행을 당해 2010년 1월경 이혼했고, 이혼 후에도 폭행과 괴롭힘, 협박이 계속됐으나 현지 경찰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면서 자신이 튀니지로 송환되면 박해당할 우려가 있어 난민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국은 A씨를 난민법 규정상 난민 인정 심사 불회부 대상으로 보고 그를 심사에 넘기지 않았다. A씨가 난민 인정률이 높은 안전한 국가(튀르키예)에서 왔고(난민법 시행령 5조 1항 4호), 그가 단지 경제적인 이유로 난민 인정을 신청한 것으로 보여 그 사유가 명백하지 않았다(같은 법 시행령 5조 1항 7호)는 게 근거였다. A씨는 이에 불복해 행정 소송을 냈다.
1심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튀니지에서 (전)남편의 가정 폭력이 심각한 상황이며, 이에 대한 국가의 보호가 실효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A씨가 경제적 이유로 난민 인정 제도를 남용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1심은 판단했다. 튀르키예의 난민 인정률이 높긴 하지만, A씨가 튀르키예에서 비자 발급이 거부된 데다 아랍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있다고 진술한 점 등을 고려해 난민 인정 심사에는 회부했어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A씨가 튀르키예에서 상당 기간 체류하면서도 난민 인정 신청을 하지 않은 점에 근거해 그곳에서 난민 인정 신청을 했다면 부당하게 거부됐을 것이라 속단할 수 없다고 봤다. 전 남편의 지속적 괴롭힘 역시 난민 인정 사유가 될 수 없고, 본국에 보호를 요청해야 할 문제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을 다시 뒤집었다. 출입 관리 당국이 난민 신청자가 ‘안전한 국가에서 왔다’는 이유로 심사 기회를 주지 않으려면, △출신국 제외 거쳐 온 국가에 재입국할 수 있음이 보장돼야 하고 △그 국가에서 공정하고 실질적인 난민 인정 심사를 받을 수 있어야 하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에 따른 지위와 처우가 보장돼야 하는 등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며 그 증명 책임은 당국에 있다고 대법원은 적시했다.
그러면서 “튀르키예는 박해 사유를 유럽 국가에서 발생한 경우로 제한하고 있고, 유럽 외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에 따른 박해 이유로는 정식이 아닌 조건부 난민으로서 임시로 머무를 수 있는 제한된 지위만을 부여한다”며 A씨가 튀르키예로 되돌아갈 경우 난민 신청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A씨가 든 박해 사유가 ‘명백하지 않다’고 본 출입 관리 당국 측 입장에 대해서도 “주요 사실에 관한 주장 자체에 심각한 모순이 있거나 객관적 자료와 현저히 배치되는 등 이유 없음이 명백히 드러나야 하고, 그 증명 책임은 당국에 있다”며 “사실관계를 정확히 조사해야 밝혀질 수 있는 경우라면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라 할 수 없다”고 대법원은 짚었다.
그러면서 A씨 사건에 대해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 박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사실관계를 정확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번 사건은 난민법 시행령 5조 1항 4호 및 7호에 대해 대법원이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한 첫 판례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