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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호 "남이 시도하길 기다려선 안돼…스스로 퍼스트무버 돼야"

입력 2025-07-30 17:36   수정 2025-07-30 23:42

“내려와야 할 산을 왜 올라가냐는 질문을 늘 받는다. 하지만 등반해 본 사람만이 얼마나 넓고 추운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세계 최초로 7대륙 최고봉을 등정하고 남·북극 양극점에 모두 도달한 한국 대표 산악인이자 탐험가 허영호 대장이 타계하기 전 한 강연에서 한 말이다. 향년 71세.

유족 측은 30일 “작년 10월부터 담도암 투병을 했고, 지난 29일 오후 8시9분 유명을 달리했다”고 전했다. 1954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제천고와 청주대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자연자원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제천산악회에서 활동을 시작해 1982년 히말라야 마칼루(8481m) 등정을 시작으로 세계 최고봉 도전에 나섰다.

고인은 ‘에베레스터’로서 최초, 최다, 최고 기록을 남겼다. 1987년 한국인 최초로 겨울철 에베레스트(8848m) 정상 정복, 국내 최다 에베레스트 등정(6회)을 비롯해 2017년 5월 국내 최고령 에베레스트 등정(63세) 등의 역사를 썼다.

세계 최초로 양극점(1994년 남극점·1995년 북극점)과 7대륙 최고봉 등정에 모두 성공해 ‘어드벤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7대륙 최고봉은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남미 아콩카과(6960m), 북미 매킨리(6194m),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오세아니아 칼스텐츠(4884m), 유럽 엘부르즈(5642m), 남극 빈슨 매시프(5140m) 등이다. 정부는 고인의 공로를 인정해 체육훈장 기린장(1982년), 거상장(1988년), 맹호장(1991년), 청룡장(1996년) 등을 수여했다.

수많은 도전에도 원정대장으로서 실수가 없었다. 단 한 명의 대원도 사망하지 않았고, 동상 등 사고 없이 전원 무사 귀환을 이끈 리더십으로 엄홍길 등 후배 산악인들의 귀감이 됐다. 고인은 언론 인터뷰 등에서 무사고 원정의 비결로 철저한 자기관리와 준비를 꼽았다. 그는 “12시간 이상 행군한 후 반드시 모든 대원이 발을 잘 씻는지 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후에야 취침했다”며 “장갑, 양말 등 모든 장비를 철저히 관리하며 많은 준비를 한다”고 했다.

허 대장은 극한의 땅을 밟는 데 그치지 않았다. 중년 이후에는 경비행기로 세계일주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파일럿으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1998년 초경량 항공기 조종면허증을 땄다. 2007년 1월 1일 오전 무게 225㎏의 초경량 항공기를 타고 경기 여주~제주 1000㎞ 단독 비행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지만, 1년여 뒤인 2008년 4월 같은 코스를 재도전해 성공했다.

고인은 은퇴 후 여러 강연에서 도전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인은) 어려서부터 ‘가지 말라’는 식의 교육을 많이 했다”며 “한국은 내가 시도하기보다 남이 먼저 하길 기다린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덩치 큰 주변국들로부터 살아남으려면 ‘내가 먼저 시도하는 정신’을 지닌 나라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족으로는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한양대병원, 발인은 8월 1일 오전 10시40분.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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