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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부터 일반인까지…AI 영상에 빠진 콘텐츠 시장 [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입력 2025-08-05 08:46   수정 2025-08-05 08:47



“전통적인 도구와 작업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걸렸을 시간보다 10배나 빨랐습니다.”

작업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혁신은 보통 제조업이나 유통업에서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런데 7월 17일(현지 시간)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테드 서랜도스 최고경영자(CEO)가 2분기 실적 발표를 하며 이같이 속도의 혁신을 이뤄냈음을 강조했다.

서랜도스 CEO는 시간뿐만 아니라 비용 절감에 대해서도 함께 언급했다. “이전 방식으로 그 장면을 제작했다면 당시 예산으론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콘텐츠 제작에서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게 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 덕분이다.

서랜도스 CEO가 언급한 장면은 지난 4월 공개된 넷플릭스의 아르헨티나 오리지널 시리즈 ‘엘 에테르나우타’에 나온다. 외계의 침공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건물들이 무너지는 순간을 구현했다. 기존 기술력과 예산으로는 촬영을 하고 싶어도 포기해야만 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생성형 AI 기반의 시각효과(VFX)를 활용하여 완성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및 영화에서 최초로 등장한 생성형 AI 기반 영상으로 기록됐다.

영상 콘텐츠 시장에 AI 기술이 적용되기 시작하며 시장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이전엔 상상력을 펼치는 것에도 일정 부분 한계가 있었다. 촬영 가능한 범위와 시간 내에서, 예산의 한도 내에서 상상해야만 했다. 구현하기 어려운 장면을 억지로 조악하게 만들면 오히려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니 말이다. 하지만 이젠 AI 기술을 활용해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상상하는 모든 것을 뛰어난 수준의 영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이같이 급속한 기술 발전이 이뤄지며 국내외 기업들은 서둘러 AI 영상 콘텐츠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누구나 AI 영상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 일반인 사이에서도 AI 영상 만들기 열풍이 불고 있다. AI로 영상 창작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방송사도 개인도 뛰어든 AI 영상 경쟁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곳은 해외뿐만이 아니다. 국내 콘텐츠 기업 CJ ENM은 개별 AI 도구의 강점을 하나로 통합한 ‘시네마틱AI’를 자체 개발했다. 이를 기반으로 만든 AI 숏폼 애니메이션 ‘캣 비기’를 지난 6월 공개하기도 했다. 해당 작품에선 캐릭터 디자인과 스크립트 작성 일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과정의 제작을 AI가 맡았다. 여기서 나아가 장편까지 제작하고 있다. 올 하반기엔 시네마틱AI로 만든 장편 영화 ‘아파트’(가제)와 글로벌 신화를 각색한 장편 시리즈물 ‘레전드’(가제)를 공개한다.

다른 방송사들도 AI를 전면에 내세워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MBC의 ‘신비한TV 서프라이즈’는 AI를 활용한 특집 코너인 ‘프로젝트 AI’를 지난 6월 선보였다. 우주 유영에 성공한 알렉세이 레오노프의 이야기, 루브르박물관에 걸린 명화 ‘모나리자’ 도난 사건을 AI 영상으로 재현해 화제가 됐다. EBS도 AI를 활용해 제작한 4편의 단편 영상을 담은 ‘EBS AI 단편극장’을 지난 6월 공개했다.

대중성과 예술성 모두를 갖춰야 하는 영화 시장에서도 AI 기술 도입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7월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선 100% AI 기술을 활용해 만든 영화 ‘그를 찾아서’가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지난해 국내 영화제 최초로 AI 영화 국제경쟁 부문을 신설한데 이어 아예 영화제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개막작으로 AI 영화를 편성한 것이다.

이 정도면 영상 콘텐츠 시장에서 AI 기술을 모르거나 외면하는 것은 사실상 ‘퇴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일반인도 영상 생성형 AI를 활용해 AI 영상을 잇달아 제작하고 있으니 말이다. 2023년까지만 해도 AI 기술은 업계의 일부 전문가들만 익히고 활용해 왔다. 그러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소라(SORA), 비오(VEO) 등 여러 영상 생성형 AI가 나오고 이전에 먼저 나왔던 런웨이의 젠(Gen)도 성능이 고도화되면서 일반인들도 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최근 SNS엔 투명하고 단단한 유리로 된 과일을 칼로 자르는 ASMR 영상이 유행하기도 했는데 이는 구글의 영상 생성형 AI인 비오(VEO)3로 만든 영상에 해당한다. 간단한 프롬프트만 작성하면 영상으로 뚝딱 만들어 주는 식이다. 이 같은 현상은 올초 챗GPT에서 지브리풍 이미지를 만드는 게 유행처럼 번지면서 다양한 세대가 AI 이미지 만들기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간단히 AI 영상을 만들 수 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등 하나의 놀이문화처럼 즐기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어도비 프리미어 프로 등을 활용한 영상 편집 기능을 익힌 사람이라면 AI 영화, AI 광고 등의 감독이 될 수도 있다. 실제 국내외에선 여러 기관과 기업이 주최하는 각종 AI 영상 공모전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수상작은 극장 상영, 기업과의 협업 등 다양한 기회를 얻게 된다.
승부는 상상력이 결정짓는다
하지만 국내외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AI 영상 경쟁에서 분명 경계해야 할 점들도 있다. 누구나 AI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웬만한 아이디어로는 이 무한경쟁에서 이기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상력의 대대적인 확장이 가능한 AI 영상 시장에선 무엇보다 창의적인 생각의 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AI 기술을 익히는 것에만 매몰되어 상상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창작자만 다수 양산된다면 국내 영상 시장은 오히려 도태될 수밖에 없다.

고용, 저작권 문제에 대한 논의를 보다 심도 있게 진행하고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2023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일어난 대규모 파업은 배우와 작가들이 콘텐츠 제작에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것에 반대하여 진행됐다. 그 우려가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 문제도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다. 최근 디즈니와 NBC유니버설은 이미지와 영상 제작에 사용되는 생성형 AI 미드저니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소송을 진행했다. AI 영상 자체뿐만 아니라 해당 영상에 활용되는 이미지, 스타일, 음악 등의 저작권까지 보호할 수 있는 체계화된 법제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후회할 사람들은 창작의 욕구와 영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무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 자들이다.” 퓰리처상 수상자였던 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가 한 말이다. 지난해 10월 어도비는 영상 생성형 AI를 공개하기 전 행사장 대형 스크린에 이 문장을 띄웠다. 전 세계가 뛰어들고 있는 AI 개발 경쟁, 그중에서도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승부를 펼치는 AI 영상 제작 경쟁은 갈수록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여기서 승기를 잡기 위해선 이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이용할 뿐만 아니라 앞장서서 더 큰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그동안 가슴속에만 품고 있던 창작의 욕구와 영감을 많은 사람들이 AI 영상으로 과감하게 펼쳐 보인다면 이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 막강한 상상력의 힘에 다양한 산업적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까지 결합한다면 한국 콘텐츠 시장의 미래는 충분히 밝을 것 같다.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kimhk@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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