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만에 돌아온 연극 '2시 22분'에서 제니 역을 다시 맡은 배우 아이비는 한결 여유로운 표정으로 작품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05년 가수로 데뷔한 아이비는 2010년 이후 뮤지컬 '시카고'의 록시, '아이다'의 암네리스, '렌트'의 미미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뮤지컬 배우로 자리잡았다. 2023년에는 국내 초연작 '2시 22분'으로 연극 무대에 처음 섰다. 이제는 뮤지컬과 연극 무대가 더 어울리는 아이비를 지난 3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2시 22분'은 새벽 2시 22분, 매일 같은 이 시간에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를 듣는 아내 제니와 제니의 말을 믿지 않는 남편 샘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이들 부부의 집에 초대된 친구 로렌과 벤까지 무대 위 네 사람은 발걸음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새벽 2시 22분까지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긴장감 넘치는 토론을 이어간다. 영국 극작가 대니 로빈스가 쓴 동명 희곡이 원작으로, 소름 돋는 결말의 반전이 묘미다. 아이비는 처음 대본을 읽었을 당시를 떠올리며 "영화 '식스센스' 같은 반전이 너무 놀랍고 재밌어서 출연을 결정했다"며 "대본을 읽었을 때 결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이비가 맡은 제니 역은 남편 샘과 달리 귀신의 존재를 믿는 인물이다. 아이비는 "제니는 사랑하는 샘의 이야기를 믿고 스펀지처럼 흡수하는데, 샘은 끝까지 자신을 믿어주지 않아 서운하고 열도 받았을 것 같다"며 "'당신(샘)한테 스펀지 이상의 뭔가가 되고 싶다'는 게 제니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사"라고 설명했다.
극 중 제니는 아이가 있는 엄마. 아이비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존재다. "강아지를 키우고 있긴 하지만, 제 배로 아이를 낳은 적은 없기 때문에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엄마 역할뿐 아니라 살인자 역할을 맡는다고 해도, 살인을 해봐야 연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내가 이 상황이라면 어떨까' 많이 상상해봤고, 원래 싫어하는 호러영화도 많이 찾아봤어요."

아이비는 불안한 한 인간으로서 제니에게 동질감을 느낀다고 했다. "제니가 겪고 있는 상황처럼 저는 늘 두려움과 공포심이 많은 사람 같아요. 누구나 내면에 어린아이가 있듯이 저도 평생을 불안한 상태로 살아왔어요. 내면의 불안감이 저를 무너뜨리기도 했지만 성장시키기도 했죠. 사실 무대에 서는 것도 매일 무섭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이라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배우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불안감은 '연습'으로 덜어낸다. 아이비는 "'2시 22분'은 네 명이 대사를 주고받는 형태라 넷이 계속 만나 연습해야 몸에 익는다"며 "주 6회를 만나 저녁 7~9시까지 연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초연 때보다는 한결 수월해졌다. 대사를 외우는 속도가 빨라졌고, 극 중 샘에게 등짝 스매싱을 날리는 등 애드리브도 즉석에서 만들어낸다. 작품을 바라보는 눈도 깊어졌다. "초연 때는 대사를 외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때 놓쳤던 걸 많이 보게 됐어요. 예를 들어 원작에서 제니가 'Fuck'이라는 욕을 자주 쓰는데, 같은 단어라도 상황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요. 제가 자꾸 영어 원문을 보니까 연출님이 '영어로 공연할 거냐?'고 하시더라고요."(웃음)
'2시 22분'은 결말을 알고서도 재관람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은 작품이다. 첫 관람 때 놓쳤던 결말의 단서를 따라가거나, 깜짝 놀라는 다른 관객의 반응을 지켜보며 새로운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아이비는 "달라진 소품의 위치 등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가는 재미가 있어 두세 번씩 보시는 것 같다"며 "무대도 실제 공간처럼 정교하게 꾸며놔 1열에 앉아서도 오페라글라스로 보시는 관객도 있다"고 했다.
아이비에게 이번 연극 도전은 어떤 의미가 됐을까. "솔직히 말하면 '노래가 편했던 거구나, 뮤지컬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극을 해보니 연기하시는 분들을 더 존경하게 됐고요. 뮤지컬을 15년 이상 했지만 '노래도 결국 연기'라는 걸 새삼 깨달으면서 더 잘하고 싶어졌어요. 연극이 저한테 열정을 불어넣은 것 같아요."
'2시 22분'은 8월 16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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