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알고 보면 심심한 나라다. 뉴욕이나 시카고처럼 마천루가 들어선 큰 도시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사실 미국의 정수는 끝없이 펼쳐진 대지이고 거기 살다 보면 사람들은 심심하다 못해 무료해질 수밖에 없다.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작은 행사라도 있으면 기꺼이 참가한다. 동네 학교의 운동 경기 대항전, 농축산물 박람회 같은 것도 있다. 이런 박람회 가운데 주 단위로 열리는 ‘주 박람회’(State Fair)가 가장 크다. 아이오와주의 행사는 그 규모와 인지도가 모두 상당하다.
미국 영화에서 사람들이 어딘가에 모여 관람차를 타고 총을 쏴서 인형을 떨어트리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는가? 그게 바로 박람회다. 아이오와주는 1854년에 시작했다니 17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8월 한여름에 11일 동안 열리는데 100만 명 이상이 찾아온다. 물론 아이오와도 옥수수와 감자가 유명한, 들판이 전부인 주다.
아이오와주 박람회에는 나름의 명물이 하나 있으니 바로 ‘버터 소’(Butter Cow)다. 맞다, 문자 그대로 버터를 깎아 만든 소다. 소가 만들어 내는 크림으로 버터를 만들고 이로 다시 소의 조각상을 만든다니 나름 메타적인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이 버터 소 또한 명물로서 역사가 나름 장구하다. 1911년부터 등장했으니 114년이나 됐다.
버터 소 조각의 전통은 세계 2차 대전 시기 같은 예외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는데, 114년 동안 고작 다섯 명의 조각가가 맡아 왔다는 사실 또한 놀랍다. 기록에 의하면 대니얼스는 대략 10년 정도 박람회를 책임졌고, JE 월레스가 뒤를 이어 36년을 맡았다.
매년 조금씩 모습이 바뀌는 소를 조각하는 데 대략 270㎏의 버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뼈대가 중요하다고. 학창 시절 찰흙 조형을 해본 이라면 알겠지만, 뼈대가 없으면 견고함이 떨어져 정밀한 상을 만들 수 없다. 버터도 마찬가지다. 일단 나무와 금속 등으로 뼈대를 세운 뒤 버터를 붙여 대략 소의 모양을 잡아준 다음 조금씩 깎아내 실제 생물과 닮게 만든다.
버터가 녹지 않도록 영상 4도의 냉장고에서 대부분의 작업이 이뤄진다. 약 270㎏의 버터라면 토스트 1만9200장에 발라 먹을 수 있는 양. 버터는 매년 새것을 쓰는 게 아니라 재활용하는데, 최소 십 년은 묵은 것도 있다.
1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이오와주 박람회의 상징 역할을 하면서 버터 소는 이제 친구도 생겼다. 소뿐만 아니라 같이 전시하는 작품을 하나씩 더 만드는 전통이 1994년부터 생긴 덕분이다. 유명한 컨트리 음악 가수 가스 브룩스로 시작된 이 전통은 엘비스 프레슬리(1997), 해리 포터(2007) 등 다양한 인물이나 캐릭터로 확장됐다.
이용재 음식평론가·아르떼 칼럼니스트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