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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를 지우고 나니…색의 언어만 남았다

입력 2025-07-31 16:55   수정 2025-08-01 07:45


하태임(52)은 ‘컬러밴드 작가’로 불린다. 국내 미술시장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다채로운 색(컬러)의 띠(밴드)를 겹쳐 추상화를 그린다. 경쾌한 리듬감으로 캔버스 위를 가로지르는 그의 색띠에는 보는 이들의 마음과 공간을 화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최근 서울 신사동 서울옥션에서 열린 특별전 작품들도 그랬다. 지난 4월 그가 미국 나파밸리의 와이너리 ‘세븐스톤스 에스테이트’에 머물며 빛과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회화들이다. 밝고 부드러운 화풍, 프랑스 명문 국립미술학교(에콜 데 보자르)를 졸업한 이력, 추상화 거장인 아버지 하인두(1930~1989)에게 물려받은 예술적 유산, 인기 작가라는 타이틀…. “아무 어려움 없이 행복하고 순탄하게 살아왔을 것 같다”고 첫마디를 꺼냈다. 하지만 하태임은 “절대 그렇지 않다. 나는 생계형 작가였다”며 웃었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길과 작품 속 색채의 의미를 들려줬다.
나의 아버지, 하인두
작가의 부친인 하인두 화백은 불교 철학과 단청, 민화 등 전통을 기반으로 색면(色面)추상을 그린 ‘한국적 추상화’의 선구자다. 가장 사랑하는 고명딸에게서 그는 화가의 소질을 봤다. 음악을 하겠다는 하태임에게 “재능을 왜 썩히려고 하냐”며 미술을 공부하게 한 이유다.

그는 딸의 프랑스 파리 유학을 강력 추진했다. “너는 자유롭고 호방하게 그림을 그려야 하는 사람이야. 그러니 파리로 가야 한다. 거기서 네 꿈을 펼쳐봐라.” 하태임의 고등학교 선생님에게는 미술 공부와 유학 준비를 위해 자율학습을 면제해달라고 요청하며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딸에게 제 꿈과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파리 유학은 하인두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이기도 했다. 함께 파리로 떠나 부녀가 함께 미술을 공부하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하 화백은 딸의 유학을 눈앞에 둔 1989년 암과 싸우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열일곱 살의 하태임은 홀로 프랑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1994년 디종 국립 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다.



머나먼 타국에서의 학업은 쉽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상실감과 우울감, 향수병이 겹쳤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계속 생각하다 보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혔어요. 잠도 못 이룰 정도로요. 얼마나 두려움이 심했는지 루브르박물관의 고전 명작들을 보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오래된 유화 물감의 텁텁함, 어두운 색채에서 죽음이 떠올랐거든요. 지금 제가 밝은색의 아크릴 물감을 쓰는 것도 그때의 기억 때문이에요.”
‘밴드’에 이르다
마음의 병이 깊어진 하태임은 휴학을 결심했다. 상태가 어찌나 심각했는지, 학교는 설립 350년 만에 처음으로 휴학을 허가해줬다. 귀국 후에도 괴로워하던 하태임을 구한 건 어머니가 마련해준 전시 기회였다. 1995년 그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서울 인사동 종로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장에는 독일 표현주의 등에서 영향을 받은 격렬하고 뒤틀린 그림들이 걸렸다. “일종의 ‘한풀이’였어요. 마음속 고통과 혼란을 한바탕 쏟아내고 나니 한결 나아지더라고요.”

위기를 극복하고 파리로 돌아간 그는 자신만의 작품을 찾아 여러 실험을 거듭했다. “프랑스어 실력에 문제가 없었는데도 유학 시절 내내 프랑스인과의 소통에 한계를 느꼈어요. 문화적 배경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그 소통의 한계를 작품으로 표현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한글과 프랑스어를 한 화면에 함께 적어 겹쳐놓고, 그 글자를 지우기도 했습니다. 언어와 문자를 뛰어넘어 진정한 소통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담긴 작업이었어요. 그렇게 문자들을 지우다 보니 띠 형태가 남았습니다. 그게 지금의 작품 속 띠 형태의 시초가 됐습니다.”




하태임은 1998년 에콜 데 보자르를 졸업한 뒤 프랑스에 남았다. 작업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99년 모나코 국제현대회화전에서 ‘모나코 왕국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여파로 가세가 기울어 2000년 현지 활동을 접고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온 그를 기다린 건 화려한 예술가의 삶이 아니었다. 형편이 넉넉지 못해 갓난아기를 키우며 통역 아르바이트, 미술 과외, 기간제 교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부지런히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열었다. “경기 덕소에 미술 교습소를 차리고 아이들을 가르친 게 기억에 남아요. 모양은 서툴지만 순수하고 강렬한 아이들의 그림을 보며 ‘형태보다 색이 감정을 더 강렬하게 전달한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화풍이 지금의 ‘컬러 밴드’로 자리 잡은 건 2011년. 번뜩이는 재능이나 영감의 산물이 아니라 오랜 세월 삶을 꾸리며 노력을 쌓은 끝에 도달한 결과물이었다.

색채에 담아낸 삶과 행복
박사 학위를 따고, 시간 강사로 취업하고, 삼육대 교수로 임용됐지만 여전히 미술시장에서 그는 무명에 가까웠다.

그러다 2017년 전환점이 찾아왔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작품이 모두 팔려나간 것. 이 전시를 기점으로 그의 그림을 찾는 사람이 급증했다. 작가는 “그 덕분에 온전히 작품 활동에만 전념할 용기를 얻었다”며 “이듬해인 2018년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작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묻자 “색을 통한 치유”라는 답이 돌아왔다. “제 그림으로 아픈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했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하태임의 대표 연작 제목이 ‘통로’(un passage)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내 그림을 통해 관람객이 각자 자신의 가장 좋았던 시절, 마음속 찬란한 풍경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는 어떤 그림을 그릴까. 하태임은 “내 작품의 핵심은 형태가 아니라 색”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밴드는 색을 가장 잘 담아내기 위해 선택한 그릇입니다. 형태는 변할 수 있겠죠. 하지만 색의 힘을 믿고, 새로운 색의 아름다움을 찾는 여정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해나갈 겁니다. 저는 ‘색채 탐험가’가 되고 싶어요.”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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