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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다이닝 세계화 전초전…'스위트 서울'이 앞에 섰다

입력 2025-07-31 17:07   수정 2025-08-01 02:38


서울 북촌 한옥마을 언덕에 자리한 고즈넉한 분위기의 수경재. 지난봄 1층에 자리 잡은 카페 '아라리(ARARI)'는 요즘 미식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식 파인다이닝 최초 미쉐린 3스타를 받고, 7년간 유지한 가온의 저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다. 홍시의 속살을 부드럽게 다듬고 동그랗게 빚은 '란(卵)'을 톡 터뜨려 먹는 즐거움, 생강과 계피를 달여낸 음료에 곶감을 담아 마시는 '홍시 수정과'까지 한국의 식재료에 파인다이닝만의 섬세한 요리 기법이 덧입혀졌다.



아라리는 60여 년간 도자기를 만들어온 광주요그룹의 식음료(F&B) 사업부문인 가온소사이어티가 한식 파인다이닝을 대중화, 세계화하려는 의지로 펼쳐낸 한식 디저트 카페다. 아라리는 우리말로 ‘작은 일에 기쁨을 느끼는 마음’이란 뜻.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한식 파인다이닝의 새 역사를 쓴 가온(7년간 미쉐린 3스타), 그 뒤를 잇는 비채나(9년 연속 미쉐린 1스타), 그리고 아라리까지 20여 년째 가온소사이어티의 중심에 서 있는 김병진 셰프(가온소사이어티 부사장)를 만났다.

김 셰프는 2003년부터 광주요그룹에 몸담고 있다. 광주요가 도자 그릇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을 담고자 시작한 가온은 김 셰프를 만나 ‘왕의 요리’를 지향하며 독자적인 한식 세계를 구축했다. 미쉐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미미하던 시절, 미쉐린 별 3개를 따내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창의성은 물론 파인다이닝에 요구되는 집념과 섬세한 수작업, 이를 함께할 인력을 구하는 일까지 모든 여정이 모험이었다.

“저는 솔직히 셰프 자신이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각 분야 장인들이 모여 헤드 셰프의 의도를 빛나게 해줄 때 비로소 예술이 된다고 봅니다. 가온도 그랬고, 비채나도 음식이 화려하진 않습니다. 지금도 한식은 소담스러운 가운데 정감과 단아한 여백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온은 2016년 미쉐린 3스타를 획득한 이후 7년간 유지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2022년 문을 닫았다. 2012년 서울 한남동에서 시작해 2017년 잠실 시그니엘 서울로 옮긴 비채나는 가온의 신념을 더 모던하게 해석해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유난히 인력 이동이 많은 파인다이닝 업계에서 가온소사이어티는 좀 유별나다. 한번 입사하면 오래 근무하기로 알려져 있다. 현재 비채나의 헤드 셰프를 맡고 있는 전광식 셰프도 가온의 원년 멤버. 그는 “하루 3~4시간 자고 일하며 별 3개로 정상에 오른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게 우리의 힘”이라며 “100년 넘게 미식 세계를 평가해온 기관의 인정을 받은 건 한식의 세계화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김 셰프는 광주요의 도자에서 음식의 영감을 많이 받았다. “젊을 때는 하얀 플레이트가 가장 좋았어요. 흰 접시를 캔버스 삼아 붓으로 칠하거나 다른 도구로 긁는 기법을 쓰며 플레이팅했죠. 이제는 개발 단계에서부터 형태, 색, 질감을 구상해 한식을 표현하기 시작했고요.”

가온과 비채나에서 긴 시간 쌓은 한식 파인다이닝의 신념과 철학은 아라리의 메뉴로 재탄생했다. 한식 디저트의 매력을 현대적인 외형과 재미있는 식감으로 구현한 메뉴들을 김 셰프는 ‘스위트 서울’이라고 부른다. 홍시 수정과, 산딸기 오미자, 말차 유자 등으로 제공되는 ‘아라리 차’를 비롯해 참기름을 섞은 밀가루 반죽을 켜켜이 접어 밀대로 민 다음 튀겨 초콜릿을 입힌 ‘약과 초콜릿’, 길에서 보던 국화빵의 재료와 식감을 살린 ‘서울 모나카’ 등 아라리에서 맛보는 스위트 서울은 재미있고 새롭다.


모든 메뉴는 단순해 보이지만, 어느 하나 쉽게 만든 것이 없다. 아라리 차에 있는 란만 해도 그렇다. 얼핏 경단처럼 보이는 란은 분자요리 기법으로 만든다. 과일을 칼슘제를 넣고 얼린 뒤 알긴산에 담그면 얇은 막이 형성된다. 아라리 차 한 잔에 8개 란이 들어가고 아이스크림 위에도 란을 올린다. 김 셰프와 함께 디저트 메뉴를 개발한 이지우 셰프는 스태프 한 명과 함께 하루 1500여 개의 란을 일일이 손으로 만든다. 해외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고 2019년 가온소사이어티에 합류한 이 셰프는 “해외에서 온 손님들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식감과 맛이라고 말한다”며 “한식 디저트가 떡과 매작과(梅雀菓)로 한정되는 점이 못내 아쉬웠는데, 국산 재료를 직접 골라 정성을 쏟는 점을 알아주는 것 같다”고 했다.

파인다이닝의 셰프는 접시에 올린 작은 한 조각에 수십 가지 재료를 쓴다. 추구하는 맛을 얻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인내하기도 한다. 보통의 식사보다 몇 배 비용을 줘야 경험하는 파인다이닝에서의 식사를 돌아본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돈을 주고 산 것은 결국 셰프의 시간. 어느 누군가에게는 생애 단 한 번인 식사일 수도 있기 때문에 셰프는 그렇게 긴 시간 공을 들이는 것 아닐까. 한 사람의 인생을 건너 여러 세대를 거치며 축적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분야가 미식일 테다. ‘한식 파인다이닝의 대중화’라는 미션을 받아 든 김 셰프는 왜 ‘스위트 서울’로 첫 번째 답을 내놨을까.

“대중화는 미쉐린 3스타 셰프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요. 음식이란 결국 많은 사람이 함께 나누고, 그 경험을 공유하며 추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점에서 한식 파인다이닝은 너무 한정적인 방식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가치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방법을 아라리에서 찾은 셈이죠.”

아라리 북촌은 테이크아웃 카페로 운영된다. 그 옆엔 3대를 이어 도자와 도자에 담을 음식, 전통주에 헌신해온 광주요그룹의 직영점 ‘광주요 북촌’도 자리했다. 한식 디저트의 재미있고 새로운 맛, 한국 도자의 멋과 함께 북촌 한옥마을의 풍경을 느긋하게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셰프와 손님 사이, 미쉐린 별 너머엔 분명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존재한다고.

한지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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