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국민의힘에 설상가상 종교 논란까지 덮쳤다. 대선후보 경선 등 당내 선거에서 신천지, 통일교 등 종교집단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폭로 때문이다. 이에 과거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보여준 특정 종교 찬양 행보의 속내가 드러나는 분위기다.
"신천지 교주 이만희씨까지 만나 신도 10여만명의 당원 가입 사실을 확인했다"는 홍 전 시장의 폭로는 정치권에 큰 파장을 안기고 있다. 국민의힘 해산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폭로가 사실이라면 위헌적인 범죄 행위"(전현희 최고위원)라고 반색했다. 국민의힘은 "입당할 때 종교를 안 적지 않나. 어떤 종교를 갖고 입당했는지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송언석 비대위원장)며 명쾌한 반박이나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경닷컴이 취재한 국민의힘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에 논란이 된 종교집단이 당내 선거에 내뿜는 입김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이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표와 직결되는 소위 '머릿수' 때문이다. 2022년 대구에서 진행된 신천지의 주요 포교 행사인 '10만 수료식'에는 당시 국민의힘 소속 전·현직 광역 의원들이 참석해 신천지나 이만희 교주를 찬양하는 축사를 한 바 있다. '떼거리 도움'을 기대하며 연단에 오른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한 관계자는 "신천지 수료식에 현역 지자체장이 축사를 보내 당이 발칵 뒤집힌 적도 있다"고 했다.
다수의 신도를 앞세워 경선 후보에게 지원을 약속하고 대가를 요구하는, 일종의 '딜'을 제안해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다른 관계자는 "대선 경선 때 한 예비후보에게 한 종교집단이 접근했는데, 해당 후보가 신앙심이 깊어 거절했다"고 했다. 김성태 전 국민의힘 의원도 최근 라디오에서 "대선, 총선 등 큰 선거를 치를 때는 큰 종교단체에서 항상 유혹이 들어온다"며 "저도 큰 선거의 책임을 맡고 있을 때 통일교 등 여러 사람들이 접촉을 제안해 오는 게 허다했다"고 했다.
종교집단은 지방선거에서도 조직력을 과시하는 경우가 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역별로 5000명 이상씩 지교회를 두고 있는 종교집단은 지방선거에서도 영향력이 막강하다"며 "당에서 지방선거 공천을 받으려면 당원 가입을 얼마나 많이 시켰는지가 중요하다. 당원 가입할 때 추천인을 쓰게 돼 있다. 종교집단이 한 사람으로 밀어주며 가입하면 그게 성과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보수 진영에서 여러 차례 논란이 됐던 '전광훈 충성' 논란도 보수 개신교의 표심을 노리는 정치인들의 셈법 탓에 빚어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윤상현 의원은 지난 1월 10일 전 목사 주최 집회에 참석해 전 목사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너무나도 존귀하신 전광훈 목사님"이라고 했다. 김재원 전 최고위원은 선출 나흘 만인 2023년 3월 12일 사랑제일교회 예배에 참석해 "최고위에 가서 목사님이 원하시는 걸 관철(하겠다)"이라고 했다.
중도층 표심을 의식해 '전 목사와 손절해야 한다'는 요구가 수년간 당내에서 빗발쳐 왔지만, 보수 정당이 앞으로도 그를 완전히 끊어내긴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장외집회에서의 전 목사 말 한마디로 움직이는 수많은 신도가 있고, 이를 이용하려는 정치인이 있어서다. 이 때문에 2020년 미래통합당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전 목사와 선을 긋지도, 외면하지도 못한다는 이른바 '전광훈 딜레마'라는 말이 정치권과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더욱이 전광훈 딜레마와 유사한 '전한길 딜레마'마저 등장한 형국이다. 전씨가 윤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하면서 아스팔트 지지층을 등에 업으면서다. 당내 쇄신파 인사들은 전 목사와 마찬가지로 전씨와 절연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전씨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를 과시하고 있다. "전한길을 품는 자가 당대표 최고위원 나아가 집권 세력이 될 것"이라는 발언도 했다. 또 역시 일부 정치인은 이런 전씨와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다.
정치권 관계자는 "수십 년간 보수 정당은 극단주의와 결별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모두 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맞서왔다"면서 "이 딜레마를 풀지 못하면 외연 확장에 계속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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