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권력 비대화 우려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수사를 시작하는 권한인 ‘수사개시권’에 대한 손질에 나섰다. 입건 전 조사(내사) 시작의 최종 결재를 담당 수사 과장에서 경찰서장으로 끌어올려 수사 전반에 대한 지휘부의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자칫 서장급 간부가 인지 수사를 꺼리는 경향을 나타나게 해 결과적으로 인지 수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찰이 수사개시권을 손질하는 것은 첩보가 편향적으로 제공되면 공정한 수사가 어려워질 수 있단 우려 때문이다. 특정인이 첩보를 계속 제공해 수사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어나면 특정인의 이익에 복무하는 수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휘부의 통제력을 강화해 이른바 ‘청탁 수사’나 ‘꼬리 자르기’를 방지하자는 차원이다. 2021년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이 택시기사를 폭행했던 사건을 수사해 내사 종결한 서초경찰서 수사관이 서장에게 보고를 하지 않아 논란이 됐던 사건을 막기 위한 조치다.
수사권을 남용한 논란이 발생하기 전에 경찰이 선제적으로 자구책을 준비하는 것은 새 정부의 대대적인 수사 구조 개편과 맞물려 있다는 해석이다. 검찰 권력을 줄이는 과정에서 경찰의 수사권 비대화 비판이 뒤따를 수 있어 국민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노력을 보이고 있단 것이다. 수사개시권은 경찰이 가진 수사 권한 중 검찰의 감시를 받는 수사종결권과 달리 외부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 영역이다.
또 박성주 신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이 수사권과 관련한 내부 자정 작용이 필요하다는 지론을 일선서 과장 시절부터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 본부장은 서울 내 경찰서에서 형사·수사과장을 7차례나 거친 흔치 않은 수사통 수뇌부다. 그는 지난 7일 첫 언론 브리핑에서 “경찰 수사 개시 단계에서 투명성을 보강하는 등 전 단계에서 보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각종 책임을 져야 하는 일선 경찰서장들은 인지 수사 성과에 따른 이익보다 실패로 인한 책임에 대한 우려로 입건 전 조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보신주의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찰서장은 담당 과장보다 사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기도 어렵단 분석이다.
경찰서장이 경찰 수뇌부의 입맛에 맞는 사건만을 위주로 인지 수사에 나설 수 있단 분석도 제기된다. 경찰의 허리라인에 해당하는 총경급인 경찰서장은 수뇌부의 인사조치에 따라 향후 커리어가 좌우된다. 실무자의 판단뿐만 아니라 정무감을 우선시해 사건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 구조란 의미다. 또 지방 경찰서와 달리 시·도청 수사대나 서울 관내 경찰서는 챙겨야 할 인지 사건이 많아 총경급에 업무 과중이 몰릴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선 서장에 대한 ‘무한 책임’을 강조하면서 서장 보직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경찰서장(총경)은 “경찰청장이 모든 사건에 대해 최종 결재를 한다고 문제가 사라지지 않듯, 단순히 서장에게 책임을 부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닐 것”이라며 “수사와 통제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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