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시연(50)은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마에스트라(여성 지휘자)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2006년 게오르그솔티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고 이듬해 미국 보스턴심포니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지휘자로 임명돼 주목받았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경기필하모닉을 이끌며 국내 국공립 오케스트라 첫 여성 상임지휘자 겸 예술단장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현재 뉴질랜드 오클랜드필하모니아오케스트라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 중인 그가 오는 9월 또 하나의 직함을 추가한다. 스페인 세비야왕립오케스트라 수석 객원 지휘자다.
성시연은 최근 한국경제신문 인터뷰에서 “오클랜드필하모니아의 강점이 속도감 있는 진행과 높은 집중력이라면 세비야왕립오케스트라의 장점은 뛰어난 유연성과 여유로운 호흡”이라며 “국경을 넘어 여러 해외 악단을 지휘하면서 나라별 악단의 특징을 더 잘 이해하고, 어떤 상황에도 빠르게 반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야 지휘자로서 일희일비하지 않고, 강요하기보다는 물러서서 연주를 즐기며, 믿음에 기반한 관계에 감사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독일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영국 로열필하모닉 등 유럽 명문 악단들이 거듭 찾는 지휘자로 통하지만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베를린예술대에서 공부하던 피아니스트였다. 지휘자란 새로운 꿈을 꾼 건 고(故)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공연 영상을 보고 강한 탐구심이 생기면서다. “푸르트벵글러의 지휘를 보는데 순간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았습니다. 음악에 대한 엄청난 열망과 갈급함이 흑백 화면을 뚫고 제게 닿는 것 같았거든요. 이토록 폭발적인 에너지를 창조해내는 근원이 무엇일까 너무나 궁금했어요. 새로운 갈증이 생겨난 순간이었죠.”
이후 독학으로 지휘 공부를 시작한 그는 1년 만인 2001년 한스아이슬러대 지휘과에 들어갔고, 2006년 게오르그솔티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신예로 떠올랐다. “데뷔 무대부터 지금까지 제 목표는 딱 하나예요.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깊이 감명받을 만한 연주를 만들고서야 포디엄을 내려가겠다는 것이죠. 개인 커리어에 집착했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청중과 단원들이 게을러질 때마다 저를 다잡게 만드는 원동력이죠.”
성시연은 2021년 세계 3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RCO)를 지휘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전까지 이 악단을 지휘한 한국인은 정명훈이 유일했다. 성시연은 “만난 건 1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RCO는 지휘자로서 수년에 걸쳐 배워야 할 것들을 경험하게 한 악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RCO 단원들은 공연 중에도 제게 끊임없이 눈으로 말을 걸고 음악으로 소통하길 원했다”며 “무대에선 모든 것을 내어주고 내려와야 한다는 그들의 굳건한 신념에서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했다.
독일 베를린에 거주 중인 그의 공연 일정은 올해도 빡빡하다. 이달에 멜버른심포니오케스트라 데뷔 무대를 치르고, 11월엔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오케스트라 공연을 지휘한다. 성시연은 “많은 연주를 앞두고 있을 땐 며칠간 집에 틀어박혀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다”며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온종일 악보 연구에 매달린다”고 했다.
“지휘자는 모든 음표에 대한 답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한 구절을 읽어갈 때마다 ‘왜’라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지고, 그에 대한 답변을 지휘로 표현해야 하죠. 어려운 과정이지만 제 손짓에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달라질 때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희열을 느껴요. 제게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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