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는 기초제품만 8~9단계를 거쳐야 하는 걸로 유명하죠. 요즘은 디바이스까지 추가됐어요. 이 모든 것을 매일 반복하기는 쉽지 않아요. 큰맘 먹고 사놓고는 손이 안 가게 돼요. 여기에 집중했어요. ‘왜 귀찮아야 할까’ 생각했습니다. 고객의 삶을 편하게 해주는 K-스킨케어를 만들어 보기로 한 거죠.”2024년 6월 뷰티 브랜드 ‘바롤(Varol)’을 론칭한 한주영 대표의 말이다. 그는 삼성물산 패션부문 마케팅팀 그룹장을 거쳐 LG, CJ 등 기업들의 브랜드 전략을 수립해주는 브랜드 컨설턴트로 20년의 경력을 쌓았다. 2018년부터는 숭실대 겸임교수 일도 하고 있다. 다양한 커리어를 거쳐온 그에게 얼마 전 새로운 타이틀이 생겼다. 뷰티 브랜드 대표다. 브랜딩 전문가라는 강점을 앞세워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화장품 산업에 뛰어들었다.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드는 것만 혁신이 아니에요.
고객이 말로 설명 못 하는 니즈를 먼저 캐치하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한 대표가 바롤을 론칭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고객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살아온 그에게 스킨케어의 페인포인트(고객이 경험하는 불편함)가 보였기 때문이다. 브랜드명은 ‘바로 롤링’의 줄임말이다. 직관적이면서도 고객에게 쉽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도록 직접 이름을 지었다. 한 대표는 “제품은 물론이고 제품을 쓰는 상황까지 고객의 관점에서 들여다봐야 한다”며 “스킨케어의 번거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뷰티 디바이스 사용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스킨케어 단계는 더 늘어나는 추세다. 클렌징, 토너, 에센스, 세럼, 앰플, 아이크림, 크림, 수분크림 등 여러 기초화장 단계를 끝내고 5~10분의 디바이스 사용 과정까지 추가됐다. 해외에서는 ‘K-스킨케어’가 10단계로 구성돼 ‘투머치’하다는 불평이 나오고 있다.
한 대표는 ‘화장품’과 ‘디바이스’를 합쳐 스킨케어 단계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모두가 뷰티 디바이스 하나씩 가지고 있지만 이걸 일주일에 한 번 꺼내서 하기도 쉽지가 않다. 귀차니즘이 발동한다. 불편하다고 생각하지만 소비자 대부분은 그걸 감수하거나 말 없이 지나친다. 그 ‘불편함’이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개발에 착수한 지 1년 11개월 만에 디바이스와 화장품을 합친 ‘아이스롤 세럼’이 탄생했다. 제품에 내장된 스테인리스 볼을 굴려 세럼을 도포하는 방식이다. 3초 안에 즉각적인 쿨링 효과를 볼 수 있다. 한 대표는 “이건 화장품이면서 디바이스 기능도 한다”며 “짜서 손으로 바르지 않고 뚜껑을 열고 볼을 돌리면 된다. 고객들의 스킨케어가 더 간편해지는 생활 밀착형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고객이 어떤 상황에서 이 제품을 쓸 건지 생각해야 해요.
괄사 따로, 세럼 따로 쓸 필요 없이
그냥 소파에 누워서 쓱 돌리면 끝이에요.”
핵심은 ‘쿨링’과 ‘괄사’(도구로 피부를 문지르는 마사지 방법)가 한번에 가능하다는 점이다. 온도가 낮은 스테인리스 볼을 활용해 피부의 열을 감소시킨다. 또 쿨링감으로 냉찜질 효과를 얻고 부기를 줄일 수 있다. 한 대표는 “혈액 순환을 돕는 마사지를 하는 것만으로도 건강한 피부에 가까이 갈 수 있다”며 “그런 루틴을 만들어주는 제품이 바롤”이라고 설명했다.
바롤의 강점은 ‘최적의 뷰티온도’를 찾아주는 것이다. 노화를 방지하고 건강한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피부 온도를 ‘31~32℃’(뷰티온도)에 맞춰야 한다. 그러나 여름철 또는 환경에 따라 피부 온도는 그보다 높아지고 이로 인해 모공이 넓어지고 유수분 밸런스도 무너진다. 손보다 얼굴이 뜨거우면 피부 온도가 높다고 보는데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얼굴의 온도를 맞추기 쉽지 않다.
한 대표는 어떻게 하면 31~32℃로 피부 온도를 낮출 수 있을까 고민했다. 바롤은 바르는 즉시 피부 온도를 떨어뜨린다. 그는 “임상시험 결과 피부 온도가 4.2도가 낮아졌다”며 “스킨케어 첫 단계에서 뷰티온도를 맞출 수 있으니 화장도 무너지지 않고 잘 유지된다”고 말했다.
피부 온도의 중요성은 블랙핑크 멤버 제니의 세안법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2023년 8월 제니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제니루비제인 오피셜’에 ‘멧 갈라(Met Gala)’ 준비 과정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제니가 아침 부기를 제거하기 위해 얼음 마사지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또 차가운 얼음물이 가득 담긴 대야에 얼굴을 푹 담그는 모습도 보여준다.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부기를 빼는 세안법으로 ‘제니 얼음 마사지’가 유행하기도 했다.
한 대표는 “피부 장벽은 이미 소비자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단어”라며 “면역력이 강한 피부 장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건 결국 결과론적이다. 피부 온도는 피부 장벽을 만드는 출발점”이라고 언급했다.
“프라임데이 때 미국 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봤어요.
미국 고객들은 ‘부기’에 굉장히 민감하더라고요.
그래서 반응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기존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 니치시장(고객 요구를 충족시키는 틈새시장)을 개척한 만큼 고생도 했다. 특히 정보가 없는 고객들을 설득해야 하는 부분이 가장 큰 고충이다. 바롤을 통해 디바이스와 화장품의 교집합이 처음 만들어진 만큼 새로운 검색어를 구성해야 했다. 한 대표는 “디바이스와 화장품 양쪽을 모두 동시에 공략해야 하는 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바롤의 기능성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0월 아마존 입점을 시작했고 지난 7월 진행한 프라임데이에서 매출이 전월 대비 795% 뛰면서 가능성을 엿봤다. 한 대표는 “더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고 강조했다. 현재 바롤은 미국 외에도 일본, 대만 등 전 세계 9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인종에 따라 피부 특성이 다른 부분에 집중했다. 한 대표는 “미국 고객들은 쌍꺼풀 라인이 두꺼운 편이라 쿨링보다 부기 완화에 더 관심이 많더라”며 “그런 부분을 신경 써서 눈 부기를 줄여주는 제품이라는 쪽으로 공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로 달라진 외부 환경에서도
건강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바롤이 새로운 뷰티 패러다임을 만들고 싶어요.”
최근 뷰티업계가 주목하는 키워드는 ‘기후 적응형 제품’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줄일 수 있는 제품을 뜻한다. 한 대표는 바롤이 대표적인 기후 적응형 화장품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7월 우리나라 주변 해수면 온도는 24.6℃로 최근 10년 중 가장 높았다. 기상청은 여름이 빨라지면서 해수면 온도도 빠르게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기온이 오르면 피부는 더 예민해진다. 한 대표는 “외부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사람의 피부는 가장 취약하다”며 “기후변화에 맞춰 효율적이고 고도화된 제품에 대한 니즈는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바롤은 고객들에게 이런 부분을 누구보다 더 신경 쓰는 세심한 브랜드라는 신뢰를 주고 싶다. 달라지는 기후 환경 속에서 우리의 생존을 돕는 스킨케어 제품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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