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학교, 병원, 쇼핑몰…. 우리는 특정 용도의 건물을 떠올릴 때 대체로 비슷한 형태와 분위기를 연상한다. ‘우리 그렇게 하자’라고 약속한 바는 없지만 오랫동안 반복돼 온 형식이 공통의 기억으로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오스트리아 빈의 도나우운하를 따라 늘어선 건물들 사이에는 이런 상식을 깨는 ‘무엇’이 있다. 불쑥 솟아오른 화려한 굴뚝,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춤을 추듯 흐르는 원색의 창문들, 요술봉 같은 모습의 기둥들의 조합이다. 3차원화한 추상화 같은 모습의 이 건물에선 장난감 병정들이 노닐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다.
이 사랑스러운 건물의 정체는 슈피텔라우 쓰레기소각장이다. 1971년 처음 가동했을 당시에는 여느 쓰레기 소각장과 다름없이 회색의 콘크리트 덩어리였다. 1987년 발생한 화재로 작동을 멈췄고 철거 대신 재가동을 선택한 빈시는 이곳의 새로운 디자인을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에게 요청했다. 화재의 흔적 위에 나타난 새 소각장은 더 이상 산업시설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변모했다.
오스트리아 건축가이자 화가, 환경운동가인 훈데르트바서는 인간을 자연에 잠시 들른 손님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기능주의와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현대건축을 비판했고 자연에 대한 존중,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펼쳐나갔다. 그는 “직선은 부도덕하며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진다”고 주장해 기존 건축방식에 반감을 표했고, 곡선과 나선을 활용해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거주자를 위한 창문의 권리, 발코니를 뚫고 자라는 나무 세입자, 예측 불가능한 색면 배치 등은 그의 철학이 반영된 디자인 언어다. 이런 건축 철학은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쿤스트하우스 빈 등 그가 설계한 모든 건물에 일관되게 구현돼 있다.
슈피텔라우 소각장 외벽은 색색의 모자이크 타일과 재활용 유리 조각들이 형성한 패턴으로 출렁이듯이 보인다. 그 사이사이 각기 다른 디자인의 창들이 경쾌한 인상을 부각시킨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음악이 들리는 것 같은 신기한 시각적 경험이다.
발코니와 옥상 곳곳에 자리한 식물들은 이 화려한 건물을 부드럽게 감싸며 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짓는다. 멀리서도 이 소각장이 눈에 띄게 하는 굴뚝에는 금색의 돔이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테마파크와 같은 인상이 극대화하는 지점이다.
이 화려한 굴뚝은 단순히 랜드마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폐기물 소각 뒤 생기는 유해물질을 특수 필터로 걸러서 수증기로 내보내는 기술을 위한 장치다.
대부분의 소각장이 주민 반대에 막혀 설 자리를 찾기 힘든 것과 달리 슈피텔라우는 이색적인 외관과 투명한 운영으로 그 장벽을 넘어섰다. 사람들은 들뜬 모습으로 몰려와 이곳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다. 이 소각장은 소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 인근 6만 가구에 난방을 공급한다. 지역사회의 필수 기반 시설인 셈이다. 예술, 기술, 생태적 고민이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해 질 무렵 도나우운하 위로 붉은 햇살이 기울면 굴뚝의 황금 돔이 마지막 빛을 받아 반짝인다. 장난감을 닮은 굴뚝은 묵묵히 제 일을 수행하며 따뜻한 온기를 도시로 보낸다. 그 순간 슈피텔라우는 더 이상 쓰레기의 종착지가 아니다. 버려진 것이 에너지로, 혐오 시설이 도시의 풍경으로 그리고 직선적인 소비 사회가 순환적 미래로 전환되는 출발점이 된다. 쓰레기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음을, 이 자연의 언어로 가득한 소각장이 매일같이 증명하고 있다.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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