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중반에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 음악 영재를 꼽는다면 빠지지 않는 두 명이 있다. 쇤펠트 국제 현악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한 16세 첼리스트 이재리, 이탈리아 토스카나 실내악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17세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두 10대 연주자에겐 공통점이 있다. ‘신동’이란 수식어 뒤에 숨어 있는 열정이다. 성격유형검사(MBTI) 결과도 비슷하다. 김서현은 ISTJ, 이재리는 ISTP. 내향형(I), 감각형(S), 사고형(T)을 공유하는 둘은 평소 과묵하지만 음악에 매진하는 집중력만큼은 비길 데가 없다.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계를 이끌어갈 10대 소녀들을 아르떼가 만났다.

지난달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제6회 쇤펠트 국제 현악 콩쿠르 현장. 결선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팬이 구름떼처럼 몰려 이름을 외쳤다. “이짜이리.”
열여섯 살에 불과한 한국의 음악 신동 이재리를 중국어로 부른 것. 그는 이날 첼로 부문에서 최연소로 우승을 차지했다. 관객은 찬사를, 현지 악단들은 러브콜을 보냈다. 이재리는 올 연말 홍콩침례대에서 공연한다. 내년 여름엔 베이징 공연도 예정돼 있다.
한창 들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서울 신촌동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만난 이재리는 한없이 차분했다. 콩쿠르 결선에서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연주한 직후에도 우승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이재리는 “다른 참가자들도 연주를 잘해서 우승은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술에 얽매이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자유롭게 질주한다”는 현지의 극찬과 전혀 다른 자평이었다.
공연 당일엔 밥 굶고 스마트폰도 ‘아웃’
이재리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다. 원하는 소리를 낼 때까지 연습을 멈추지 않는 ‘항상심’이야말로 그의 재능이다. 이재리의 맘에 찬 공연은 인생에 단 한 번뿐. 2019년 다비드 포퍼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다.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음악적 해석도 마음에 든 무대였다. 눈여겨볼 건 자신의 강점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다.“강렬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 노래하듯 표현하는 부분에서 애절하거나 달콤한 느낌을 잘 표현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저도 달콤한 느낌을 연구하는 걸 좋아해서 어느 정도 동의해요.”
그는 ‘대치동 키즈’였다. 어머니가 국악을 했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은 취미로만 하겠다”고 못 박았다. 음악보단 영어 공부를 좋아했다. 첼로에 입문한 건 여섯 살 끝 무렵이다. 유치원에서 친구가 첼로를 켜는 모습이 멋져 보였단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간 국내 콩쿠르에서 덜컥 우승했다. 권혁주음악콩쿠르, 도암음악콩쿠르, 벨기에 이자이 주니어 콩쿠르에서도 1위에 오르거나 대상을 탔다. 꿈의 무대인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도 올랐다.
이재리는 평소 말수가 적지만 첼로를 품에 안는 순간 대담해진다. 나이를 먹으며 루틴도 생겼다. 공연이 잡힌 날엔 스마트폰을 안 본다. 식사도 거른다. 연주에 최대한 집중하기 위해서다. “연주 시작 직전엔 악보 한두 줄을 노래로 불러봐요. 그러면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아요. 곡을 해석할 땐 작곡가의 의도를 따르려고 해요. 한창 배우는 나이엔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달콤한 연주’의 신성…피아노도 배우고파
올해 서울예술고에 입학한 이재리는 학창 생활이 한창이다. 친구들과 노는 모습은 여느 또래와 같다. 평소엔 K팝을 즐겨 듣는다.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해서 팝 창법을 배웠을 정도다. 이재리는 “심심할 땐 영화를 많이 보는데 공포영화를 특히 좋아한다”며 “(미디를 찍는) 작곡도 취미로 했는데 컴퓨터가 고장 나며 노래 쪽으로 취미가 바뀌었다”고 했다.초등학교 2학년 때 첼로에 집중하느라 더 배우지 못한 피아노 연주는 그의 버킷 리스트다. 평소에도 피아노 작품을 즐겨 듣는데, 낭만주의 음악 중에서도 달콤한 곡들이 끌린다고. 제일 좋아하는 곡은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다. 제일 열심히 공부한 작곡가도 슈만이다. 브람스와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도 녹음해 보고 싶지만 음악적으로 더 성숙해진 뒤 도전하겠다는 생각이다. 롤모델로는 2002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요하네스 모저를 꼽았다. “모저는 소리, 기술, 파워가 엄청나 아무나 그 수준을 따라갈 수 없어요. 어떤 협주곡을 다루더라도 작곡가의 의도에 맞게 해석해내는 첼리스트예요.”
그는 내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다. “정석적인 해석을 하면서도 저만의 생각이 들어간 음악으로 관객에게 새로운 감정을 전하고 싶어요. 카네기홀 공연 때 관객의 박수에서 느낀 희열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느끼고 싶어요.”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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