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와 영국 등 영미권 퇴직연금의 핵심은 자율과 경쟁이다.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통해 운용 전문성을 살리는 동시에 기금 간 치열한 경쟁을 유도해 수익률을 높인다. 단순히 모든 운용 권한을 기금에 넘기는 게 아니다. 위탁자가 투자 상품을 직접 고르도록 유도해 개인의 자율성도 보장하는 구조다.
슈퍼애뉴에이션은 기금 간 무한 경쟁 시스템을 통해 발전했다. 호주 정부는 매년 장기 수익률, 벤치마크 대비 성과 등을 평가해 합격과 불합격을 가린다. 처음 불합격 판정을 받으면 가입자들에게 통지해야 하고, 2년 연속 불합격하면 신규 가입자를 받을 수 없다. 2021년 제도 시행 후 80만 명 이상이 다른 기금으로 이동한 배경이다. 제임스 코발 호주퇴직연금협회(ASFA) 이사는 “20년 전 1500개 넘는 기금이 있었지만 치열한 경쟁 끝에 100개 이하로 줄었다”며 “기금이 대형화될수록 ‘규모의 경제’를 이뤄 인프라 시설 등 개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투자해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에서는 기금형 퇴직연금의 약 95%가 ‘마스터트러스트’로 운용되고 있다. 여러 고용주가 공동으로 가입하는 방식이다. 운용 주체는 민간 보험사나 자산운용사, 혹은 국가퇴직연금신탁(NEST) 같은 기관이다. 영국에서 운영 중인 마스터트러스트는 30여 개인데, 이들 수익률은 모두 공개된다. 고용주는 성과를 보고 어떤 마스터트러스트에 가입할지 결정한다. 수익률 경쟁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영국 정부는 수년 전부터 마스터트러스트 통폐합을 추진해 왔다. 2018년 약 80개이던 마스터트러스트는 현재 30여 개로 줄었다. 대형 자산운용사 로열런던의 제이미 젠킨스 정책디렉터는 “기금 규모가 클수록 수수료 등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호주 디폴트옵션의 위험자산 비중은 작년 말 기준 79%다. 해외 주식 34%, 호주 주식 23%, 채권 11%, 인프라 11%, 비상장주식 6%, 부동산 5% 등이다. 한국 디폴트옵션의 88%가 예·적금 등에 들어 있는 것과 대비된다.
매슈 린든 호주퇴직연금가입자협회(SMC) 전략부문 대표는 “우리 디폴트옵션에선 아예 원리금보장형을 선택할 수 없다”며 “제대로 설계됐기 때문에 개인 자율성도 보장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시드니=맹진규/런던=양지윤 기자 mae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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